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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59] 위기에서 빛나는 리더십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03/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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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화성신문

영국인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은 남극횡단을 목적으로 탐험대를 구성한다. 남극점은 이미 노르웨이의 아문젠이 그리고 북극점은 미국의 피어리가 먼저 정복했으므로 그는 ‘남극을 횡단해 보리라’는 야심을 품었다. 대원 27명(나중에 밀항자가 생겨 28명)과 함께 인듀어런스(Endurance)호를 몰고 남미 최남단 사우스 조지아(South Georgia)를 출발한 것은 1914년 12월5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극 대륙에 도착하기 전, 빙산에 끼여 좌초되고 말았다. 계절 상으론 분명 여름이었건만 이상기후가 들이 닥쳤다. 결국 탐험대는 1915년 1월20일부터 무려 9개월간 얼음에 갇힌 채 남극해를 표류하게 된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호시절이었다. 먹을 게 꽤 있었다. 그런데 10월 하순에 이르니 얼름이 녹아 내리고 상황은 악화됐다. 인듀어런스 호는 파손되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소지품을 버리고 필수품만 챙겨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피신해야 했다. 함께 데리고 갔던 54마리의 개도 죽여서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 그들은 이듬해 4월이 되어서야 비교적 안전한 엘레펀트 섬에 도착했다. 

 

섀클턴은 거기서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사우스 조지아로 다시 돌아가서 구조선을 가지고 와야겠다고 선언했다. 5명의 대원과 섀클턴은 10m도 안되는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1,300km 항해에 나선다. 식량과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말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16일만에 사우스 조지아에 도착했으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들이 가야할 도시의 반대편이었다. 바다를 이용할 수 없어 그들은 이번엔 험한 산을 넘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배 한척을 구해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엘레펀트 섬에 이른 것은 8월 30일. 구조대가 섬을 떠난 지 4개월 10일이 지난 후 였다. 

 

섀클턴의 탐험대는 실패한 탐험대다. 그러나 그 악 조건 속에서도 대원들이 한 명도 희생되지 않고 전원 귀환하는 진기록을 세운 탐험대가 됐다. 거기에는 섀클턴의 범상한 리더십이 있었던 것이다. 섀클턴은 모든 것을 솔선수범했고,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었다. 심지어는 침낭조차도 섀클턴이 낡은 것을 썼으며, 음식도 똑같이 먹었다. 그는 끝까지 모두가 함께 살아서 돌아간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을 대원들과 공유했다.

 

1999년 말 영국 BBC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난 1000년 동안 최고의 탐험가 10인 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임스 쿡, 닐 암스트롱, 마르코폴로에 이어 어니스트 섀클턴이 5위를 차지했다. 그는 ‘위대한’ 실패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탐험대는 개성이 강하고 한 가닥하는 사람 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갈등이 많고 다스리기 어렵다. 위기가 닥칠 때는 내부 갈등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섀클턴은 대원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사우스 조지아로 다시 돌아가서 구조선을 가지고 온다고 떠날 때는 1개월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4개월 이상을 버텼다. 대장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15일 뉴질랜드 그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에서 극우성향의 남자에 의해 총격 테러가 발생해 무슬림 사원에서 예배를 보던 사람들이 50명이나 사망하고 50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뉴질랜드 총 리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는 총격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즉시 모습을 나타내고 수시로 범행 전모를 국민에게 알리고 추후 대책을 발표했다. 위험지역에 대한 보호 조치를 즉각 내리고, 범인이 게재하는 테러 영상을 차단했다. 그리고 무슬림 희생자 유족들과 진심이 담긴 슬픔을 공유하는 행동을 했다. 사건 다음날 아던 총리는 모든 정당의 지도자들과 함께 테러가 발생한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했다. 기독교인인 그는 검은색 상복에 무슬림 스카프인 검은 히잡을 쓰고 일일이 유족을 안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무슬림은 우리’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세월호 사건 때, 한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현장을 찾아서도 유족들과 거리를 유지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행보와는 사뭇 다른 장면이다. 

 

리더십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 빛을 발휘한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무엇보다 상황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공감하고 동행을 해야 한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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