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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15] 동탄과 ‘백조’의 꿈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06/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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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그때 우리들 클럽의 선배로 노작 홍사용이 있었는데, 홍사용은 당시 우리들이 애독하던 유일의 우리글 문예잡지 ‘백조(白潮)’의 동인으로 우리의 작품을 비평해 준 유일한 선배요 또 격려자이었다. ‘백조시대!’ 다시 말하면 ‘백조 화려하던 그 시절’이 곧 우리 조그마한 ‘요람’이 고요히 소리도 없이 자라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여수 박팔양이 1936년 ‘요람시대(搖籃時代)의 추억(追憶)’(중앙中央 7월호)이란 제하에 발표한 글의 한 대목이다. ‘요람’은 ‘근원수필’의 김용준과 아나키스트 김화산 그리고 시인 정지용과 박팔양이 중심이 돼 만든 등사판 동인지다. 박팔양의 회고에 따르면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가 이미 그 당시에 창작되었다고 하는데 후학들의 문예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홍사용과의 관계가 흥미롭다. 정지용은 잘 알려진 대로 노작에겐 휘문고보의 후배가 되고, 박팔양은 동향의 후배가 된다. 한창 습작기를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노작은 이미 스타 중의 스타였으리라. 선배이기도 했던 홍사용에게 시를 배우고 익히며 창작열을 불태운 박팔양과 정지용의 초기 시편에서 노작의 유장한 가락을 찾아 읽는 것도 영 무리만은 아니리라. 한국시는 이렇게 홍사용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문학 뿐만 아니라 연극과 출판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 문화활동을 벌인 노작 홍사용이 ‘백조’를 창간한 지 곧 100주년이 된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규교육 과정을 거친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백조’는 나도향,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방정환, 박영희, 김기진 등의 면모에서 보이듯 명실상부한 한국 근대문학의 심장부다. 표지화를 그린 안석주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사가로 잘 알려져 있고, 무용가 최승희의 친오빠이기도 한 최승일은 연극, 방송을 종횡무진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모던 경성’을 이끈 이들의 둥지가 ‘백조’였고 이후 나라 잃은 시기 역사적 실천 담론인 계급주의 문학의 맹아를 품고 창조적으로 해체된 모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노작의 위치는 좀 더 적극적인 조명을 필요로 한다.  

 

노작 홍사용과 ‘백조’는 화성시가 근대시문학예술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노작홍사용문학관 부근에 ‘백조관’이 들어서고 기존의 광장을 ‘백조광장’으로 다시 디자인한다면 근대예술의 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관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의 애달픈 이미지가 주점의 벽 한쪽을 장식하고,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이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한 장면이 상가의 간판과 함께 할 때 상술로 점철된 거리에 문화의 향기가 절로 배어날 것이다. 1910년대 휘문고보의 교복과 배재고보의 뱃지를 기념품으로 달고 포토존에 선 사람들, 그리고 ‘백조’의 표지화 속 전통예복을 입은 여인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은 백 년 전의 문화를 당대의 삶 속에서 재현하며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낼 것이다.  

 

나는 상상한다. 동탄 북광장과 남광장의 거리 주점들에 걸린 시구절을 읊으며 흥취에 젖는 사람들을. 우리 문화의 퇴적된 지층 위에서 고단한 오늘의 삶을 위무하고 또 다른 내일을 약속하며 일상을 여행자처럼 통과하는 사람들을. 길바닥을 도배하다시피 한 광고 전단지와 각종 유혹어린 선전지들 가운데서 외롭고 가난하고 드높은 영혼들이 남긴 시와 문장들은 지금 여기의 삶에 어떤 여백과 같은 것이 되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 그것은 학원가와 유흥가가 뒤섞인 거리에서 청소년들에게 이 도시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일 것이며, 스펙타클한 풍경을 소비하기에 지친 관광객들에겐 이 지역만이 줄 수 있는 웅숭깊은 하나의 특산품으로 기억되리라.

 

노작홍사용문학관과 화성시복합문화센터 사이에는 미디어센터가 있다. 100년 전 세계에 대한 참여의 방식으로 다층적인 미디어 운동을 벌였던 노작 홍사용의 정신을 잇기 위해서라도 ‘백조’를 새롭게 호출해야 할 것이다. 창간 100주년에 맞춰 노작문학관은 문예종합예술지 ‘백조’를 부활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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