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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수수께끼 그림 김홍도 풍속화 - ⑧ 대장간
김홍도와 김득신 풍속화의 미묘한 차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06/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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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일명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에 수록된 풍속화 25점은 국민그림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김홍도가 직접 그린 작품인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어 지금껏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실제 전문적인 안목이 없더라도 찬찬히 관찰하면 의문점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매주 화성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상식의 눈으로 <<단원풍속도첩>> 풍속화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를 풀며 정조와 김홍도가 살았던 시대를 여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대장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 그림1. <<행려풍속도병>> 중 <노변야로> 부분, 김홍도, 177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 그림2. <<긍재전신첩>> 중 <대장간>, 김득신, 간송미술관 소장     © 화성신문

▲ 그림3. <<기산풍속도병>> 중 <대장간>, 김준근,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 그림4. <<단원풍속도첩>> 중 <대장간>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트릭. 계획된 신체묘사의 오류 및 비일상적인 상황 설정

 

① 풀무질하는 소년이 끈을 매달아 당기는 막대의 쓰임새가 불분명하다. 

대장간의 화로는 통상 발풀무를 사용했고, 풀무질을 하면서 몸을 의지하기 위해 수평 나무막대를 설치했다. 이는 김홍도의 1778년 작 <<행려풍속도병>> 중 <노변야로>(그림 1), 김득신의 <<긍재전신첩>> 중 <대장간>(그림 2) <대장간>,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중 <대장장이>(그림 3) 등에서 확인된다.

 

② 소년과 화로 사이에 작은 담 같은 물체가 있다. 풀무질을 해도 통풍구가 막힌 셈이다.  

 

③ 낫을 가는 소년 옆에 있는 대병大甁의 주둥아리가 깨졌다.(그림 4) 칼이나 낫을 숫돌에 갈 때는 물을 뿌린다. 손바닥으로 편하게 물을 뜨기 위해서, 항용 못 쓰는 사발이나 대접 같은 용기에 물을 담아 쓴다.(그림 1. 그림 3) 그렇다면 주둥아리가 깨진 대병은 디테일이라기보다는 주의력을 시험하는 설정처럼 느껴진다.

 

▲ 잡설 김홍도와 김득신의 차이

 

조선은 건국 초부터 농업을 장려하고 상업과 공업은 억제하는 ‘무본억말務本抑末’정책을 고수했다. “공업에 종사하는 장인의 숫자는 6,600 명 정도로 제한했다. 중앙에는 130개 분야에 2,800 명을 배치했고, 지방에는 27개 분야에 3,800 명을 할당했다.”*제임스 B 팔레,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장인의 주 업무는 관청이나 지배계층의 주문을 받아 제작·납품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공산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다. 농기구가 필요하면 수요자가 대장간을 직접 찾아 구매했다. 

 

<<단원풍속도첩>> <대장간>은 ‘새 낫을 사서 숫돌에 가는 소년’을 등장시킴으로 대장간을 생산과 소비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묘사했다. 반면 김홍도와 동시대에 활약한 풍속화의 대가 김득신(1754년 ~ 1822년)이 그린 <대장간>(그림 2)에는‘새 낫을 사서 숫돌에 가는 소년’은 등장하지 않는다. 도상은 비슷할지 몰라도, 당대 풍속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설명이 결여된 풍속화이다.

 

 

주찬범 향토작가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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