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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김덕천 ㈜OK종합특송 대표이사 “나를 한 번 더 태우고 싶다”, 성장 목마른 절규
“항상 뭔가 배우는 사람이라는 느낌 주는 사람이고 싶어”
“배송 기사님을 사장님으로 부르니 소속감·자부심 높죠”
‘퀵서비스’ 보고 충격,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창업”
‘큰 그림’ 이미 완성, 그룹 이름 미리 지어… “함께 가야죠”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19/10/0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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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천 대표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화성신문

 

    

“He is still a student. 그는 여전히 학생이다. 사람이 늙기 시작하는 건 변화와 성장을 멈출 때라고 합니다. 사람이 변하고 성장하는 것은 배울 때입니다. 뭔가 항상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OK종합특송 김덕천 대표는 1972년생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씨를 뿌리는 청춘이다. 성장하는 삶을 위해 늘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계획한다. 자전거가 페달 밟기를 멈추면 넘어지듯이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1년 8월 15일 개인회사로 설립돼 2009년 11월 법인으로 전환한 OK종합특송은 현재 3000개에 달하는 경기도 운송업체 중에서 순위권에 있을 정도로 탄탄한 구조를 자랑한다. OK종합특송은 자체 개발한 전자배차시스템을 통해 배차의 정확성을 높이고, 고객의 요구에 대한 신속한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 주 무대인 화성의 경우 서울보다 면적이 1.4배나 넓지만 ‘15분 내 도착’을 원칙으로 한다. 청북, 조암, 마도, 향남 등 톨게이트 주변 6곳에 지점을 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업무는 15분 안에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성실하게 잘한다고 하더라도 꽝입니다. 15분 내 도착 서비스가 최고의 성공비결인 것 같습니다.”

 

OK종합특송의 특이한 점은 배송 기사들을 진심으로 ‘고객’, ‘인적 자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화물차량을 요청하는 기업체도 고객이지만, 운전하시는 기사분들도 우리에게는 똑같은 고객입니다. 예전에는 기사님으로 불렀지만 2007년부터 사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사업자등록을 하신 분들이니까 사장님이 맞거든요.”

 

“화주도, 배송 기사도 모두 소중한 고객”

 

김 대표는 창업 이래로 배송 기사들에게 명절 때 한 번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다. 항상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달한다. 또 1년에 두 차례, 5월 1일과 12월에 호텔이나 회사에서 위로잔치와 축하 행사를 연다. 배송 기사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이 높은 이유다.

 

“저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이 안 뽑습니다. 항상 일보다 용차 사장님 숫자를 적게 가져갑니다. 이 분들이 충분히 돈을 벌어야지요. 용차 계약한 분이 300명 정도 됩니다. 하루에 1200에서 1400건 정도 오더가 나오니까 용차 사장님들이 두세 건씩 다 하시고, 남는 오더는 저희가 외부 차량들을 이용해서 처리합니다. 용차 계약하신 분들은 오시지 말라고 해도 출근하듯이 아침에 그냥 회사로 오십니다. 여기서 일 잡고 가시는 게 가격이나 서비스 면이나 더 낫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운송회사 입장에서 차량을 요청하는 화주는 당연히 고객이지만, 운전하는 기사들을 어떻게 화주와 똑같은 고객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제가 처음 사업 시작할 때 일 많이 드리면 기사분들이 만족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닌 겁니다. 일 많이 줄 때 만족하는 게 아니라 만족을 시켜줘야 만족한다는 사실을 5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서울 사시는 분한테는 마지막 일을 서울로 드려야 좋은 것이고, 수원 사시는 분한테는 마지막 일을 수원으로, 천안 사시는 분한테는 마지막 일을 천안으로 드려야 좋은 것입니다.”

 

김 대표는 기사들에게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숱한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 일하시는 사장님들에게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키며 공무원처럼 일하시는 분, 일이 많을수록 좋다는 진짜 사업으로 하시는 분, 쉬엄쉬엄 취미 삼아 레저로 하시는 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사람 특성을 잘 파악해서 맞춤형 일감을 드려야 합니다.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집은 어딘지, 체력조건은 어떤지 등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하겠죠. 그 특성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돼서 배차가 이루어집니다.”

 

▲ 배송 차량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 대표.     © 화성신문

 

 

365일 24시간 쉬지 않는 OK종합특송의 현재 월 매출 규모는 20억 정도다. 직원은 34명. 화성시 관내 700여 업체를 비롯 전국적으로 800여 업체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월 신용계약 3600개 업체의 물류를 전담하고 있다. 고객 중에는 정관장, 다이소, 유한락스, 대웅제약, 코스맥스 등 이름이 알려진 기업들도 많다.

 

김 대표의 첫 직장은 우체국이었다. 1997년 10월 입사한 우정공무원 첫 월급은 108만 원.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 하며 벌었던 돈 보다 적었다. 그러다 98년도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오토바이로 퀵서비스 하는 사람을 보게 됐고, 호기심에 퀵서비스 회사를 찾아가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창업에 대한 열망의 씨앗은 그렇게 마음에 심어졌다.

 

28세 때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29세 때 창업을 실행했다. ‘인생 독립’ 포부를 안고 광복절인 2001년 8월 15일 창업했다. 대학교에서 만나 오랜 연애 끝에 99년 8월 결혼한 아내에게는 걱정할까봐 창업 1년 정도 후에 알렸다.

 

“제가 책에서 읽었던 글 중에 ‘남은 절대 나를 배불려 주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었어요. 가슴에 팍하고 와 닿았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너른 들판을 보며 살았어요. ‘이 넓은 뜰을 내가 다 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 그 앞을 다녔습니다.”

 

“조직 커질수록, 울타리 넓어질수록 안전”

 

창업하고 나서는 앞만 보고 달렸다. 13년 동안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남들이 보면 분명히 힘든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 힘들다고 생각 안하고 그냥 과정이려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4시간 365일 전화기 다섯 대를 항상 손에 끼고 살았어요. 24시간 군대 상황병 근무 자세로 일했습니다. 집념의 시간이었지요. 새벽 3시에 전화와도 ‘지금까지 만드시는 분도 있는데 전화 하나 받는 게 뭐가 힘들겠습니까’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창업 후 13년 동안 친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미치도록 일할 수 있었던 건 목표의식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 너른 뜰을 다 가질 거야라는.”

 

그러다 마흔둘 나이에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13년간 죽도록 일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병원 치료를 받다가 우연히 승마를 알게 됐고, 지금까지 계속 승마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승마장을 찾는다. 허리도 튼튼해졌고,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정도로 실력도 늘었다. 김 대표 집무실 벽에 20㎞를 달리는 지구력 대회에 참가한 승마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편자로 만든 네잎 클로버 액자도 벽에 걸려 있다.

 

회사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소통의 결실’이라고 믿는다. 김 대표가 기사들과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새로 한 명이 투입되면 경쟁자가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이자 협업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요. 조직이 커질수록,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우리가 안전해지니까요. 직원들에게도 나 혼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어서 내가 얼마나 안전한지 모른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김 대표는 사업을 호랑이등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멈추면 잡아먹히고, 계속 달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선다는 생각에서다.

 

“모든 비즈니스 생태계가 이쯤 하면 되겠지 라며 한계선을 긋는 순간 그걸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e is still a student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성장이 멈추면 죽는 겁니다. 확장해야 삽니다. 변해야 살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살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긍정 마인드 소유자다. 회사 이름에 처음부터 OK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고객의 요구에 ‘예스’ 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기사들을 자신의 아버지나 삼촌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화물 배차 정보 전달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경비실 통과해 왼쪽으로 가면 사무실이 있고, 사무실 몇 층 어느 부서에 있는 담당자 누구를 찾아가면 된다는 식으로 정확한 배차 정보를 제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잘 모르는 남의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직원들 월급을 제가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용차 사장님들이 일 해서 번 돈을 우리가 받는 겁니다. 그래서 용차 사장님들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김 대표가 용차 기사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용차 기사들 중에는 은행지점장 출신도 있고, 원룸 40채 가진 사람, 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사람, 해병대 원사 출신도 있다.

 

“인생 1막을 멋지게 끝내고 인생 2막을 열정적으로 보내시는 분들입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과 제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겁니다. 제가 저 분들처럼 나이 60이 됐을 때 저런 체력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김 대표는 단순한 물류 운송업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물류를 중추적으로 이끌어갈 물류 플랫폼 회사로의 도약할 꿈꾸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별도의 물류 플랫폼 개발 자회사를 가동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돌아다니는 화물차는 40만대 정도다. 버스, 레카, 특수차량을 빼면 10만대 정도가 영업용 차량이다. 이 가운데 4만 대가 김 대표가 운영하는 물류 플랫폼 속에 들어와 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플랫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화물차들을 위한 플랫폼이고, 다른 하나는 화물 운수회사들을 위한 플랫폼이다. 이 두 가지 플랫폼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사용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다.

 

▲ OK종합특송 3층에 위치한 콜센터 전경.     © 화성신문

 

 

“용기와 노력만이 우리의 희망”

 

니드만(NEEDMAN) 그룹. ‘한계를 정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고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하는 김 대표가 미리 지어놓은 그룹 이름이다. 늦어도 5년 안에는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OK종합특송, 플랫폼, 금융회사, 물류창고업까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화물 시장의 50%를 석권하겠다는 포부다.

 

“도전해서 한 우물 파면 그 안에 분명히 답이 있다”는 말을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올해 고려대 MBA 과정에 다니고 있다. 2학기에 재학 중이다. “한번 떠 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더 태울 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인적 네트워킹과 주변 상황으로는 도약하는데 한계를 느껴서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희 원우가 50명인데, 원우들 사이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매일 매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열정의 화신이다. 김 대표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김 대표가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지 궁금해 할 정도다. “꿈에다 시간을 더하면 계획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무엇이든 실행할 자신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김 대표는 새로 입사한 여성 직원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회사일과 가정일이 겹치면 항상 가정을 우선시하고, 가정일을 마무리 하고 회사로 오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입사할 때 허드렛일 하러 들어오신 줄 아는데 본인이 능력을 개발한다면 매니지먼트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34명 직원 중 26명이 여성인데 연봉 4000~5000만 원 넘는 여성이 상당수에 이른다.

 

‘용기와 노력만이 우리의 희망이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김 대표는 하루하루를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심정으로 살아간다. 매일매일 조금씩 성취해 가는 과정 자체를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남의 성공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1932년생인 어머니께서 저에게 지금도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항상 사람에게 잘해줘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남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된다. 차라리 니가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고요. 뒤돌아보면 참 귀한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믿음과 용기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자유인’을 꿈꾼다는 김 대표가 생각하는 리더의 최고 자질은 인품이다.

 

“인품이라는 단어보다 리더십을 더 잘 설명하는 단어가 있을까요?” 사옥 4층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김 대표는 기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자의 차가 세워져 있는 곳까지 따라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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