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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33] 문학과 자서전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11/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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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시간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역사도 신화도 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그렇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햇빛도 되지 못하고 달빛도 되지 못했으나 밤하늘을 찰나의 광휘로 긋고 지나가는 저 별똥별은 누가 노래해줄까요? 문학과 시는 유한한 인간이 시간 앞에서 던지는 이런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역사책이나 신화책에는 나오지 않는 자잘한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우리는 망각되기 쉬운 삶의 장면들을 기억하고 나누면서 저마다가 살아낸 세월의 증언자가 됩니다. 노래와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만나게 되고 아울러 내 안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살아나게 됩니다.

 

역사와 신화 같은 거대 서사는 개인의 삶에서는 흔히 약력이나 이력서 혹은 비문 같은 공식화된 텍스트로 나타납니다. 한 개인의 삶을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는 이같은 요약 나열 방식엔 구체적 삶의 심장 박동 소리가 없습니다. 약력이나 이력서에 들어오지 못한 노래와 이야기들을 경청할 때 거기서 문학이 탄생합니다. 가령, 문학은 태어난 해의 숫자보다 그의 태몽에 관심이 있고 백일잔치상에 오른 사물 중 무얼 잡았는지에 더 예민합니다. 입학과 졸업 같은 공식적 기록보다 입학식 전날밤의 기분과 첫 등굣길에 만난 아이의 코에 가락국수처럼 콧물이 오르락 내리락 하던 모습들에 대해서 더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개념과 추상을 걷어낸 자리에서 감각이 살아나고 사유가 꿈틀거립니다. 문학은 그러니까 우리가 문명인으로 제도화된 삶을 살기 위해 받아들인 관습이나 상식을 의심하고 반성하는 근본적인 성찰력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문학을 끝없이 거듭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서전과 닮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라고 묻고 답하면서 지난 경험들을 재해석하고 통찰한 뒤에 삶을 재구성하는 양식이 자서전이라면 근본적으로 문학과 자서전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언젠가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고독을 달래기 위해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주고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윌슨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며 생존법을 터득하고 마침내 섬을 탈출하게 됩니다. 인간은 이처럼 무인도 같은 절대적 고독 속에서 배구공 같은 사물을 의인화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이 이야기 하기의 본능을 표류한 자의 생존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자서전의 특징인 고백적 글쓰기는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 표류한 내가 ‘윌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일상의 시간들 속에 무화되어가는 나를 초점화 합니다. 

 

가령, 이런 시는 어떨까요.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김준태, ‘감꽃’ 전문) 유년시절의 평화를 상징하는 감꽃으로부터 고통스런 민족사를 암시하는 죽은 병사들 그리고 급속한 금융자본주의로의 진입을 보여주는 돈에 이르기까지 이 짧은 시는 자신의 성장기를 고백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근현대사를 성찰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먼훗날’의 삶을 ‘감꽃’이라는 제목을 통해 은근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자본의 시대를 다 경험한 뒤에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감꽃’에 있다는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스며듭니다. 몇 줄의 시를 통해 개인사와 공동체의 역사가 겹치는 경이를 우리는 이렇게 몇 줄의 시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갖추어진 개인 기록은 완벽한 사회학적 차원이다.” 폴란드 사회학자 츠나니에키(F.Znanieki)의 말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이파리들도 자신의 뿌리를 향해 돌아가는 이 가을, 노래와 이야기가 우리를 깊은 내성의 시간으로 이끌어가는 계절이 되길 바랍니다. 저마다가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거기에 문학의 미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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