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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박성권 창림모아츠㈜ 대표
“사회 밝히는 인간 보일러” 추구하는 ‘퍼스트 무버’
물류·복지 특장차량서 ‘최초’ 수식 달고 다니는 개척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공식 의전차량 ‘포프 모빌’ 제작
세종시 운행 중인 ‘굴절버스’, 인천공항 굴절버스도 수주
맥가이버 닮아 ‘물건’ 별명, 복지·친환경 양날개 추구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19/12/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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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할 수 있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박성권 창림모아츠 대표.     © 화성신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수식어가 창림모아츠박성권 대표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먼저 움직인다는 뜻의 퍼스트 무버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 혹은 기업을 의미한다. 선구자 혹은 개척자라는 의미다.

 

박 대표는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선점해왔다. 박 대표가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제품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우리나라 물류 합리화에 크게 기여한 리프트 게이트’(탑차 등 트럭 뒤에 부착돼 짐을 상하차시키는 리프트, 파워 게이트라고도 함), ‘윙바디’(트럭 양쪽 문이 날개처럼 펼쳐지며 열리는 시스템), ‘무정전 공사차량’(전봇대 전기공사할 때 전기를 다운시키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차량),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탄 공식 의전차량인 포프 모빌’(Pope mobile) 제작, 100%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버스‘2층버스’, 유럽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버스 두 대를 연결시킨 굴절버스등이 있다.

 

▲ 창림모아츠가 제작한 굴절버스. 현재 세종시에서 운행되고 있다.     © 화성신문

 

▲ 창림모아츠가 현대자동차와 공동 개발한 2층 전기버스.     © 화성신문



 

움직이는 예술작품만드는 파이오니아

 

창림모아츠는 장애인·노약자 복지차량 전문기업이다. 장애인차량, 이동목욕차량, 이동세탁차량, 휠체어 리프트 등 복지 분야 특장차량을 제작한다. 몇 년 전부터는 미래먹거리 차원에서 친환경차량 분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창림모아츠는 창성할 창() 수풀 림()이라는 한자의 창림모아츠를 조합한 말이다. 모아츠는 이동수단인 모빌리티(mobility)와 예술을 뜻하는 아츠(arts)의 합성어다. 단순한 차량이 아니라 움직이는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회사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담고 있다.

 

예전에는 파이오니아, 개척자, 이런 수식어가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회복지 사회공헌 관련 사업을 하면서, 또 여러 봉사를 하면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인간 보일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해서 그런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해요.”

 

창림모아츠가 만드는 이동목욕차량은 차안에서 목욕을 할 수도 있고,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욕조를 집안으로 들일수도 있다.

 

이동세탁차량은 세탁차량 안에 세탁기가 들어있다. 장애인이나 노인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 20194월 발생한 고성 산불 화재지역에 참여한 수많은 봉사자들은 땀에 젖은 옷과 수건을 빨아야 했다. 수해를 입었을 때도 빨래와 옷가지들을 빨리 세탁해서 널어놓고 말려야 다시 쓸 수 있다.

 

휠체어 리프트 차량은 이동에 불편함을 가진 이동교통약자를 위해 설계된 차량이다. 휠체어를 탄 채 차량에 탑승하고, 탑승 후에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창림모아츠는 문턱처럼 장애인이나 고령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이동수단 상품도 제작하고 있다.

 

기립형 휠체어도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대만과 공동으로 개발했어요. 스위치를 누르면 휠체어가 위로 올라와서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요.”

 

화성상공회의소와 한국보조기기산업협회 회장이기도 한 박성권 대표는 1957년생이다. 학교에서 전기 제어와 메카트로닉스 제어를 전공한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박 대표는 군 제대 후 공공건물이나 대형건물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건축조형 분야에 2년 정도 몸을 담았다. 그러다 냉동수송 분야가 유망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냉동 관련 사업을 하던 집안 형님과 함께 냉동차량 개발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가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서울우유를 실어 나르는 냉장차량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그런데 집안 형님이 가스공사 관련 사업을 한다며 기존 사업을 떠맡으라고 했지만, 박 대표는 자금 부족과 큰 위험 부담으로 인해 다른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1984년이었다.

 

제가 가진 기술을 상용화 할 수 있는 회사였어요. 구로동에 있던 그 회사는 일본 미쓰비시냉동기기를 국내에 들여와서 보급하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생산관리 책임자로 일하면서 냉동차 국산화 작업을 했습니다. 일본 수입품과 국내 생산 제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일을 했었어요.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 납품하는 기회를 잡았고, 굉장히 잘 나갔어요.”

 

▲ 집무실 책상에 앉은 박 대표. 박 대표 뒤로 좌우명인 '나는 할 수 있다' 액자가 보인다.     © 화성신문

 

 

나가서 큰 그림 그려봐

 

1986년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인도를 걷고 있는 박 대표를 승용차가 덮친 것이었다.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쳐 6개월 동안 입원해야 할 정도였다.

 

회사 일에 자부심도 생기고, 국산화 작업이 많이 진행돼서 수입품보다 제가 개발한 제품이 더 많이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국산화 마무리 단계였는데 제가 다쳤으니 회사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어요. 깁스한 채로 휠체어 타고 회사 가서 일했습니다. 매일 외출하다시피 했지요. 직원들이 병원으로 서류를 잔뜩 가지고 오기도 했어요. 퇴원 후에도 6개월 동안 휠체어 타고 생활했어요. 그때 휠체어 타고 다니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았어요. 장애인 돕는 차량을 만들고자하는 의욕을 불사르게 된 계기가 됐어요.”

 

박 대표는 책임감이 강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몰입해서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다.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다.

 

이후 박 대표는 친구들과 회사를 만들어 3년 정도 운영했으나 경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그 회사는 풍림환경특장이라는 회사에 인수됐다. 인수 조건이 박 대표가 3년 동안 근무한다는 조건이었다. ‘키맨을 알아본 것이다.

 

3년 동안 볼모로 잡혀 있는 신세였지만, 박 대표는 회사가 추구하는 사업들을 열심히 추진했다. 연구소장을 맡아서 미래상품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신제품들을 개발했고, 새로운 장비와 기술도 개발했다. NT(뉴 테크놀러지) 마크도 몇 개를 획득했다. 기술영업도 했다.

 

회사가 잘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어요. 일주일동안 회사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책상 옆에 침대 펴놓고 밤새 일하다 피곤하면 잠시 누워서 눈 붙이곤 했지요. 삼사일 집에 못 들어간 적도 많아요. 환경장비와 특장 분야를 다 맡아서 해야 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지요.”

 

볼모로 잡힌 지 3년이 지날 무렵, 특장보다는 환경장비 쪽에 관심이 더 많았던 회사 사장은 환경장비에 전념하기 위해 특장 분야를 없애려고 했다. 박 대표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렸다.

 

사장님,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보필했습니다. 이제 독립하고 싶습니다.”

 

독립 선언을 하고 나니 임원들이 사장에게 박 대표 입장을 많이 대변해줬다고 한다. 창업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한 임원은 박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면서 자네 같이 진솔한 사람 처음 봤어. 우리 회사에 있기는 아까워. 독립하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가서 큰 그림 그려봐.”

 

회사 사장도 박 대표에게 신뢰가 컸던 터라 특장차 관련 분야를 모두 박 대표에게 넘겨주었다. 장비와 자재 팔아봐야 고철 값 밖에 못 받는다고 하면서. 특장 분야 인력 열 명도 박 대표 창업에 합류했다. 1994년도의 일이다.

 

창림정공으로 설립됐으며, 2012년 창림모아츠로 사명을 변경했다. 창림정공 시절에는 물류 운반 플랜트 사업에 주력하다 복지차량 분야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창림모아츠로 개명했다. 박 대표는 그 과정에서 직원들을 독립시켰다.

 

지금까지 저하고 인연이 돼서 제가 갖고 있던 기술과 시장으로 독립한 회사들이 다섯 개입니다. 리프트 게이트 특장 전문인 현대휴먼텍은 우리 회사보다 더 큰 회사가 됐어요. 현대자동차 특장차 협력업체입니다. 저와 같이 오래 일해 온 심복으로 여기던 간부들에게 독립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세 개 회사가 더 독립할 겁니다.”

 

나는 할 수 있다좌우명, ‘三思一言가슴에 새겨

 

박 대표는 왜 사업 분야를 전환했을까.

 

제 기술이 우리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고 어두운 곳을 밝히는데 사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류차량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복지차량 만드는 것이 더 가치 있습니다. 물류 분야를 정리하게 된 이유입니다.”

 

박 대표는 외유내강형이다. 사회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에서 매력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박 대표가 복지차량을 넘어 친환경차량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화석연료 위주의 운송수단을 친환경에너지로 바꾸는 사업을 우리가 앞장서서 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현대나 기아에서 만든 차에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개조하는 특장차를 제작했습니다. 친환경차량에서는 우리가 모든 분야를 다 만들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될 겁니다. 물론 의자나 배터리 등은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 제품을 써야겠지요. 앞으로 우리 같은 중소 중견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될 겁니다.”

 

창림모아츠가 제작한 굴절버스는 100% 전기로 움직인다. 이미 세종시 노선에 네 대가 투입됐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사용될 굴절버스도 이미 수주를 받아놓은 상태다. 현재 양산을 위한 생산시설 증설을 마친 상태다.

 

수소버스도 현대자동차에서 개발이 다 끝난 상태다. 현재 여러 대가 제작돼 시범 운행되고 있다. 박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부품을 가져다가 자체 수소버스 차량을 만들 계획이다. 창림이 만들고 현대가 파는 협업관계인 셈이다.

 

창림모아츠는 1994년 회사 설립 후 첫 발행한 5,600만 원 짜리 1호 계산서와 4,000만 원 짜리 2호 계산서를 모두 부도 맞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왔다. 창림모아츠의 장점은 뛰어난 설계능력과 빠른 소통능력이다. 기발한 제안을 많이 하는 박 대표가 엔지니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들이 다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요. 뒤 따라가서는 오히려 그 시장만 망가뜨리게 됩니다. 자신의 기술로 블루오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하하.”

 

퍼스트 무버다운 박 대표의 말이다. 복지차량 분야 우리나라 1위 기업인 창림모아츠는 현재 글로벌 톱10 수준이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복지차량 분야에서 창림모아츠를 모르는 회사가 없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영국에 본사를 둔 모빌리티 네트웍스라는 그룹에 정식 멤버로 등록했다. 2025년까지 톱5로 올라서는 게 목표다.

 

나는 할 수 있다.’ 2016년도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박 대표의 좌우명이다. 꿈꿔왔던 제품이 만들어지고 상품화될 때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선친이 귀가 닳도록 이야기한 삼사일언’(三思一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다. 많은 생각을 한 이후에 말을 하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기발한 발상으로 집안 농사일을 많이 도와 부모로부터 신통한 아이라고 인정받았던 박 대표. 군 복무 시절에도 맥가이버처럼 모든 일을 해결함으로써 상사로부터 무한 인정을 받으며 물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 대표는 CEO의 가장 큰 덕목으로 목표 설정 능력을 꼽는다. 나침반처럼 방향 설정을 잘 해야 한다는 의미다.

 

존중과 배려, 경청과 긍정마인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박 대표는 20년 전에 프로 골퍼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젊은이들에게는 쫄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박 대표의 버킷리스트 1번은 애마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바이커들의 로망인 미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66번 로드(66 ROUTE)를 달려보는 것이다.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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