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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화 박사의 심리칼럼] ‘음치와 몸치(tone deaf and two left feet)’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1/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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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저는 세계적인 음치일 뿐만 아니라 몸치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못하니 저에게 노래를 시키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저는 몸치입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어울리면 흥이 깨질테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어울림에서 돌아설 때 내심 그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여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는 그 자신의 합당한 이유로 음치와 몸치를 핑계삼는다. 그리고 그 모임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킨다.

 

어느 날 TV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가사가 그의 귓전을 뚫고 가슴으로 들어왔다.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흔들어 놓았는지 몸의 찌릿함을 느낄 때 입술을 통해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흥얼거림이었다. 동시에 그 흥얼거림의 소리가 커지면서 오른팔과 손이 허공을 향해 서서히 올라갔고 동시에 어깨가 흔들거렸다. 마치 아리랑 춤을 추듯 온 몸이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입술을 뚫고 나오는 노래가사에 자연스레 몸을 맡겼다. 그는 몸을 자신의 자연스런 흐름에 맞추어 따라가 보았다. 음률이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춤 또한 형식에 맞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가슴의 소리와 몸의 흐름이 원하는 대로 그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리듬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불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형식에 맞지 않는 춤을 춰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와 춤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은 이미 노래와 춤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해야 된다는 타인의 평가와 판단이 두려워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또한 그는 몸과 마음을 경직시킨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을 제한시킨 자기 자신의 통제자였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러도 괜찮고 추고 싶은 춤을 추어도 괜찮다.’라는 생각 대신에 타인의 평가에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와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면서 자신을 부족하고 잘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이로 인하여 장소가 어떤 곳이든 간에 그는 스스로 노래와 춤이 있는 곳을 싫어하고 거부해왔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해 스스로 제한시켜오면서 고립시켜왔다. 그는 이제 타인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꼼짝 못하게 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춤을 추고자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와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신과 함께 신나게 놀아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주는 것인지 자기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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