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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가 노작 홍사용을 닮았더라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1/3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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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 홍사용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를 남겼다. 시인은 자신을 눈물의 왕이라고 표현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다 왕의 나라로소이다라는 구절로 시를 맺었다.

 

노작 홍사용을 기리는 문학관이 화성시에 있다. 노작 홍사용이 왕의 눈물이기에, 그 문학관을 지키는 관장은 스스로를 눈물 왕릉 지키는 능참봉이라고 일컫는다. 관장은 이런 말을 했다. 문학관은 품사에 비유하면 관계대명사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가치가 흐릿하지만 무엇인가와 무엇인가의 관계를 맺게 만드는 연골 역할을 할 때는 빛이 납니다.”

 

그의 말에서 청와대가 오버랩된다. 요즘 청와대를 보면 관계를 맺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맺어진 관계마저 애써 훼손시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극한의 분열로 치닫고 있고, 국민들도 반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온 나라가 물고 뜯고 불신의 덩어리가 된 듯한 느낌이다.

 

노작은 스스로 눈물의 왕이 됐다. 설움이 있는 곳, 그늘진 곳을 시인은 눈물로 보듬고 싶었던 게다. 시인은 빛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외진 곳, 그늘진 곳을 바라봐야 하는 문학인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했다.

 

청와대를 보면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 일개 시인조차 소명에의 충실을 위해 스스로에게 눈물의 왕이라는 멍에를 씌웠는데, 청와대는 그늘진 곳, 목이 터져라 외치는 수많은 국민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한 채 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 빛은 열혈 추종자들이다.

 

관장은 시는 상처가 꽃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고 했다. 청와대가 시처럼 될 수는 없을까. 국민들의 상처가 꽃이 될 수 있도록, 그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는 없을까. 관장은 또 리더는 배경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배경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꽃을 피우고 스스로 배경이 되는 청와대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동엽의 시 산문시1’석양 대통령이라는 직종이 나온다. 석양은 싸워서 이기지 않고 짐으로서 세계를 물들인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이기는 존재가 아니라, 노을처럼 져서 세상을 물들이는 존재가 되면 또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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