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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49]알베르 까뮈의 ‘페스트’가 남긴 교훈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 복지센터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3/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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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희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     © 화성신문


전국이 코로나19로 인해 난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운영되고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논평을 내며 기사를 쏟아낸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던가? 최근 10여 년 동안 메르스를 비롯한 돼지열병, 조류독감 등 감염병으로 인한 이슈들이 있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매일같이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소하기만 하다. 

 

학창시절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La Peste)’라는 소설이다. 마침 집 책장에 자리잡은 세계문학전집 중 그 책이 읽은 흔적 하나 없이 꽂혀 있었다. 영화도 두 번 혹은 세 번 보면 그때마다 감상이 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부분들도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20여 년 만에 다시 들여다본 ‘페스트’는 새로운 내용을 담은 책과 다름이 없었다.

 

학창시절 레포트 제출 마감에 쫓겨 읽었을 때의 그로데스크한 느낌은 여전했으나, 이전과는 다른 시대상과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와 통찰이 매우 놀라웠고,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1913년에 태어나서 1960년에 세상을 떠난 노벨문학상 작가 알베르 까뮈는 1947년에 ‘페스트’를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1940년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인구 20만의 도시에 페스트가 번지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봉쇄되고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절망적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대혼란의 도시에는 질병에 굴복하지 않고 비인간성의 팽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건대(일종의 전염병 차단에 힘쓰는 시민자원봉사단)를 조직하여 전염병과 싸우고 도시의 비인간화로 인한 황폐화에 저항한다. 

 

알베르 까뮈는 이처럼 도시 전체를 비인간화를 넘어서 철저한 고독으로 몰아넣는 질병 앞에서 맞서는 사람들을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것도 소용없이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방법으로든 저런 방법으로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질병이 만들어 놓은 공포로 인한 허위와 야만에 맞섰는데, 이때 그들이 가졌던 마음은 선의(善意)이고 선의가 비인간성에 맞서는 인간다운 면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비인간화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혼란의 도시는 어쩌면 이들의 무모한 선의와 성실성으로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그리고 페스트는 힘을 잃는다. 도시는 안정이 되었지만 페스트가 할퀴고 간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 전염병의 대유행을 인정하는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이는 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위험등급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2020년 1월 3일 이후 중앙방역대책본부를 통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매일 현황을 국민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우리시 보건소 공무원들도 2교대로 근무하면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의료인들은 감염의 두려움을 갖고도 진료현장에서 병마에 대처하고 있다. 지역 약국의 약사는 마스크 판매 여부를 묻는 시민들의 퉁명스럽고 냉소적인 질문을 하루 종일 들으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페스트가 덮쳤던 오랑시가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공포와 두려움, 비인간화에 무력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의료인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지만, 삶의 터전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때를 지나고 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함께 기뻐하고, 손님이 줄어서 힘들어하는 우리 주변 자영업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쇠약해진 몸으로 인해 감염의 두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나 취약계층 이웃들의 두려움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질병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이며, 70여 년 전에 쓰인 고전 ‘페스트’가 우리게 주는 메시지다.

 

badworke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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