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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정희준 (재)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 “인생은 사랑 만드는 과정, 사랑 커지면 인격도 커져”
현실 정치 실망해 ‘정치 꿈’ 접고, 장학재단·홍난파에 ‘올인’
화성군청 남양 유치·남양초 재건·풍화당 복원… 善한 발자취
德·格 갖춘 ‘홍난파 전도사’, “난파는 음악 모든 장르 선구자”
“남은 인생 두 가지 소원, 장학재단 키우고 홍난파 사업 완성”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0/05/2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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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준 재단법인 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     © 화성신문

 

 

사람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여기서의 향기는 냄새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고 격()이다. 모처럼 좋은 향기를 뿜어내는 귀인을 만났다. 화성신문 창간 16주년을 며칠 앞두고서다.

 

지학(遲學) 정희준 재단법인 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 그는 원로(元老). 원로는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지학에게 어떤 분야교육홍난파였다. 1938년생인데도 열정이 넘치고 심장은 뜨거웠다.

 

아호 지학은 더딜지() 자에 배울학() 자다. “늦게 깨닫고 학문에서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 늦게나마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지학은 선고(先考)인 송호(松湖) 정영덕 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양조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던 송호 선생은 해방 직후 첫 남양 면장을 지냈다. 일제 때 남양교회 목사이자 3.1운동 당시 33인중 한 사람이었던 이필주 선생의 영향으로 교회 내에 유치원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교육에 큰 뜻을 품게 됐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설립하려는 뜻을 가지고 준비하다 6.25사변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경제적 타격에 자식을 잃는 아픔까지 겪었다. 지학은 전쟁통에 형과 누나가 죽고 그렇게 외아들이 됐다.

 

 

▲ 정희준 이사장이 홍난파 선생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화성신문

 

 

선친 설립한 장학회, 2009년 장학재단으로 확대

 

아버님께서는 그 못 다한 한으로 남양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주시려는 생각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1985년도에 송호장학회를 설립하시고 1987년부터 남양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었어요. 3년째 되던 1990년에 타계하시어 제가 그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송호 선생은 전쟁 후 지역주민들과 함께 기성회를 만들어 남양중학교를 건립했고, 나중에 공립화되면서 현재의 남양중고등학교가 됐다. 학교 정문 옆에 송덕비가 있다.

 

화성군 남양에서 태어나 남양초등학교를 나온 정희준 이사장은 경기고(1957)와 서울대 법과대학(1961)을 졸업했다.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며 대학 2학년 때부터 정치인의 길을 걸을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현실 정치에 실망하면서 생각을 접었다.

 

외아들이 된 제가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 반대가 대단했습니다. 1978년도에 아버님이 강제로 저를 수원으로 내려오게 하셨어요. 내려와서는 그때 홍난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수원여자대학에서 학장까지 하게 됐죠. 아버님께서는 남양 발전을 위해 군청을 유치해야 된다는 생각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두 가지 염원을 제가 이어 받아 이루어 드렸지요.”

 

정 이사장은 1985년도에 설립된 송호장학회를 20095월에 재단법인으로 확대시켰다. 군청 남양 유치도 1992년부터 화성군청 유치 남양추진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선친의 뜻을 이루는데 일조했다. 이밖에도 정 이사장이 화성시에 남긴 선명한 발자취는 많다. 대한민국 지역도서관 1호 부지를 제공했으며, 화성서부경찰서 유치,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남양초등학교 재건,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들을 위해 만든 기로회(耆老會) 당호이자 다 쓰러져가는 기와집이던 풍화당(風化堂) 복원에도 공헌했다.

 

여든이 넘은 정희준 이사장이 현재 인생 과제로 삼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장학재단을 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홍난파 사업을 완성하는 것이다.

 

 

▲ 재단법인 송호·지학장학재단 로고.     © 화성신문

 

 

송호·지학장학재단 로고는 소나무와 책으로 표현돼 있다. 장학재단의 장학금은 두 가지다. 선친의 아호를 딴 송호장학금은 1987년부터 중고등학생에 장학금을 지급하다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되면서 1992년부터는 고등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성적이 상위 10% 내로 우수하면서 학비조달이 어려운 화성시 관내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원 대상이다. 15년간(1995~2010)은 대학 진학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7년 이래 지금까지 송호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총 537명에 달한다.

 

2010년부터 지급되고 있는 지학장학금은 화성 출신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과 석·박사 과정 및 연구기관에서 실질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자연과학도에게 장학금(연구비)을 지원한다. 박사학위 취득자에게는 1,000만 원, 석사과정 700만 원, 그 외 대학원생에게는 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된 것은 바로 과학의 힘이거든요. 이공계 학생들 공이 크다는 말이지요. IT, 전자, 조선, 자동차 등 모든 분야는 과학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학장학금은 일생을 이공계 자기분야에서 헌신할 사람만 선발해서 지원합니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박사 학위 받은 뒤까지 계속 지원하고요.”

 

지학장학금의 경우 엄격한 심사를 통해 소수 인원을 선발, 집중적·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위한 우수 인재 양성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후세 교육에 대한 자극제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다. 모든 결정은 지역인사 8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의결을 거친다. 세무사 등 전문인 감사 2명이 회계감사를 하고, 모든 재무내용은 전자공시를 한다. 현재까지 양성된 인력은 박사 학위 취득자 10, 석사 학위 취득자 5명이다. 이들 중 3명이 대학교수를, 3명이 각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 정희준 이사장의 선친 송호 정영덕 선생을 기리는 송덕비.     © 화성신문

 

 

가곡 많이 부르면 행복해지고 천당 갑니다

 

정 이사장은 홍난파 사업에도 혼을 담은 정성을 쏟고 있다. 사단법인 난파합창단 초대이사장과 난파생가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단법인 난파의집이사, 난파생가 기념사업추진위원회(화성시 공식 명칭은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 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예술가곡보존회 명예회장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근대음악과 홍난파>, <난파를 기리는 마음> 같은 연구자료를 발간하기도 했다.

 

무대에도 직접 1년에 한두 번 서요. 홍난파 노래를 합니다. 우리가곡 부르기 운동도 하고 있어요.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우리나라 최고 원로 작곡가 최영섭 선생과 같이 하는 단체가 많아요. 나보다 10살이 많아요. 제가 홍난파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오래도록 해온 걸 음악가들이 알고 초청한 거예요. 그래서 합류하게 된 거지요. 남양에 생가음악회를 만들었어요. 화성시음악협회가 받아서 생가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홍난파 선생에 대한 친일 시비를 거론할 때는 정 이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사실 법률적으로는 더 이상 시비를 걸 수가 없어요. 이미 다 판결이 난 상태거든요. 재판 기록도 산더미처럼 있어요. 그런데도 홍난파 선생에 대한 시비를 하는 분들이 지금도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정 이사장은 홍난파 전도사로 불린다. 홍난파 선생의 딸이 홍난파를 기리는 사업, 홍난파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일 등 홍난파 선생과 관련된 모든 걸 정 이사장에게 위임하는 위임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게 있었어요. 이름도 거창하죠. 제가 홍난파 선생을 대변하는 정식 대리인 자격으로 변호사들을 데리고 소송을 했죠. 극적으로 인쇄가 들어가기 이틀 전에 법원 판결로 유일하게 이름이 빠졌어요. 천우신조였지요. 홍난파 선생 전도사라고 불리는 건 음악대학 음악단체 평론가협회 같은 곳에서 친일 시비에 대해 많이 연설하고 다녔기 때문일 거예요. 대부분이 홍난파를 옹호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 지난해 9월 지학장학금(연구비) 수여식 후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정 이사장.     © 화성신문

 

 

정 이사장은 홍난파 선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홍난파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음악가예요. 음악의 모든 장르에서 선구자였지요. 난파 선생은 남양읍 활초리에서 1898년에 태어났어요. 난파의 동요와 가곡은 명곡이 많아요. ‘고향의 봄봉선화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애창곡이자 명곡이죠. 항일의 의미가 있는 노래예요.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화합의 의미로 불리는 노래가 고향의 봄입니다. 난파 선생이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지금 작곡한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작곡가가 됐을 겁니다. 난파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봉선화를 작곡한 게 1920년이에요. 올해는 봉선화가 작곡된 지 100주년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홍난파 선생이 돌아가신 종로구 홍파동 홍난파가옥’(대한민국 등록문화재 90호 근대문화유산)을 관리 운영하는 사단법인 난파의집 주최로 626일 첫 음악회가 열린다. 74일에는 한국예술가곡보존회가 주최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다.

 

가곡 많이 부르면 행복해지고, 가곡 많이 불러야 천당 갑니다.” 가곡 예찬론자인 정 이사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정 이사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곡에 대한 애착이 묻어난다.

 

가곡은 한 나라의 자연, 한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예요. 나라마다 특색이 있어요. 오래전에 우리나라와 이태리, 독일, 러시아 가곡들을 비교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 가곡의 특성은 난파 선생이 제일 잘 표현했어요. 저는 난파의 마지막 가곡인 사공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가곡을 부르면 마음이 정화돼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가곡 많이 불러서, 착해지고 건강해지고 천당 가시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정희준 이사장은 화성시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급격한 변화상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피력했다.

 

화성시는 인구로도 면적으로도 상위에 있습니다. 재정자립도도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1위예요.서해안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도 갖추고 있죠.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서 산업화하기도 좋고, 서해안 시대를 맞아 문화와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아쉬운 건 자연이 너무 많이 파괴됐고, 일장일단이 있기는 하지만 공장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좀 더 자연친화적인 교육 문화 예술 관광의 고장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 정희준 이사장이 2019년 3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8회 한국예술가곡보존회 정기음악회’에서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봄처녀’를 부르고 있다.     © 화성신문

 

 

홍난파 생가 기념사업, 반드시 완성돼야

 

산수(傘壽)의 나이를 넘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과 격(),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도 연륜과 상관있을 터이고.

 

행복은 마음 다스리기에 달렸어요.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수양하느냐, 사람과의 관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해요. 내 이웃, 남을 위하는 일이 나의 행복이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저에게 보람의 첫째는 장학생들이 학위 받거나 교수 임용소식을 접할 때입니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까다로운 사람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 하겠습니다. 후회와 반성은 자꾸 해야 해요. 다듬어지는 과정이니까요. 이 말은 꼭 하고 싶네요. 정의와 공정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사회적 가치이자 자산이라는 것을.”

 

정 이사장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인생은 사랑을 만드는 과정, 사랑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사랑이 커지면 인격도 커지는 거예요. 사회를 움직이는 리더십 바탕에도 이웃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해요. 그 위에 헌신이 필요하죠. 요즘은 선행, 진실, 헌신은 잘 보이지 않아요. 이해(利害)에 매달리고, 승리(勝利)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요. 사랑과 멀어지는 사회현상에 미래가 걱정스러워요. 힘든 세월을 지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네요. 힘든 시기가 좋은 겁니다. 음식도 끓여야 제 맛이 나듯, 고난이라는 게 인생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해요. 고난을 잘 받아들여서 선용해야 합니다.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계기가 되니까요. 그게 진정한 자기 사랑입니다.”

 

 

▲ 정희준 이사장이 부지를 기증한 남양도서관 전경.     © 화성신문

 

 

정 이사장이 지학장학금 수령자들에게 강조하는 세 가지 인생지침이 있다. ‘전공과목에 일생을 걸어라, 교수를 목표로 삼아라, 영어공부 열심히 하라.

 

인터뷰에 몰입하다보니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남은 인생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홍난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 암울했던 시절에 탄생한 천재적인 거목이지요. 그를 기리고, 우리나라 음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남양읍 활초리 홍난파 생가 기념사업은 화성시의 계속사업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문화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어요. 우리나라 음악을 얘기하자면 난파 선생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고향의 봄 꽃동산조성, 난파기념관, 근대 서양음악 역사박물관, 가곡 작곡가 작품 보관소, 시청각 교육실, 기념품점 등을 복합적으로 조성하면 명품 음악교육장과 관광명소가 될 거예요. 남양에서 태어난 제가 묻힐 곳도 이곳입니다. 고향을 위한 일도 여럿 했습니다만, 생전에 장학재단을 더욱 충실히 해 놓는 일, 난파 생가 기념사업의 완성을 보는 일을 소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He is...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수원여자대학 학장

사단법인 난파합창단 초대이사장

난파생가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대위원장

) 재단법인 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

) 사단법인 난파의집 이사

) 난파생가 기념사업추진위원장

) 한국예술가곡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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