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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6주년 기획] ‘화성작가회의’ 시인들의 눈으로 본 화성
아~ 아름답고 정겨운 화성이여!
파도소리, 아픔도 기쁨도 기억하리니!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0/05/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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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과 시인.     © 화성신문

 

 

사물을 볼 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 중에는 사물의 특징과 속성, 그리고 핵심과 본질을 유달리 잘 꿰뚫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들이다. 그 작가들 중에서도 시인은 더 특별하다. 보고 느낀 바를 은유와 함축, 확장과 축소를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해 내는 능력 때문이다. 화성작가회의 시인들은 화성시를 어떻게 가슴에 담고 있을까.

 

 

▲ 김명철 시인. 화성작가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 화성신문


 

시인이 행복한 도시

김명철 시인 (2006<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짧게, 카운터펀치)

 

화성시 남양읍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수원을 지나 의왕으로 진입하는 길이었다. 도로 팻말에 시인이 행복한 도시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인이 행복한 도시라니? 그런 도시가 있어?’ 설마,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차에서 내려 팻말을 자세히 보았다. 사실인 즉, 시민의 자 모서리들이 둥글게 깎여 있었다. ‘그래, 시민이 행복해야 시인이 행복할 수 있겠지. 시민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시대정신을 도외시하는 시가 있을 수 있는가. 시민의 행복이 곧 시인의 행복이겠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화성시민으로 생활한 지도 벌써 오래 되었다. 처음에 화성시에 왔을 때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감탄을 했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는 곳마다 자연경관은 내 눈을 사로잡았고 역사적 유적지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많은 생각들의 단초가 되어주었다. 그러니까 화성의 자연지리와 역사지리는 시를 쓰는 나에게는 천혜의 자원들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 그런데 실망스런 일이 있었다.

 

화성시는 시인, 작가들에게는 인색한 것 같았다. 화성작가회의를 결성하여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학놀이를 신명나게 하려 하였으나 놀이마당을 위한 멍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자연을 소재로 하는 문학작품의 구성, 역사적 현장에서 시민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증언문학, 화성시 서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는 통일문학의 발원 계획 등등이 모두 묵히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시에서 깔아주는 멍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정보 부족일 거야, 다시 한번 더 찾아보고 더 세차게 문도 두드려보고 해야겠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유난히 선명하게 뜬 낮달을 보니 화성의 공룡알 화석지가 생각났다. 그 화석지는 나에게 삶과 생명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요즘 가장 아끼는 시를 한 편 얻게 되었다. 나의 생명이나 존재에 대한 사유는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 휘민 시인.     © 화성신문

 

 

화성 탐사를 기다리며

휘민 시인 (2001<경향신문> 등단, 시집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이맘때 듣기 좋은 소리가 있다. 개구리 소리다. 도시에 사느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반가운 소리를 화성에 와서 다시 듣는다. 기산동은 그런 곳이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곳, 도농복합형 도시인 화성시의 축소판 같다. 개구리들의 노랫소리 너머로는 메타폴리스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날마다 스카이라인을 갈아치우는 괴물 같은 신도시 너머에 이렇듯 내밀한 속내가 감춰져 있다니. 연고도 없이 서울에서 내려와 늘 이방인 같았던 나는 그렇게 화성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화성 탐사를 계획했다. 용주사의 회양나무와 백미리의 갯벌, 공룡알 화석지의 드넓은 갈대밭과 궁평항의 일몰을 만났다. 문체반정 시기에 홀로 정조와 맞섰던 이옥의 기개와 눈물의 왕홍사용의 선한 눈빛이 화성 땅 어딘가에 서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당성 아래 어디쯤에는, 간척지가 되어버린 왕모대포구의 붉은 칠면초 뿌리 어디쯤에는, 아직 다 캐내지 못한 설화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보물들을 발굴하고 싶다. 나에게 화성이 아직 미지의 땅인 이유다.

 

지난해 7,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가 창립되었다. 현재 20여 명의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 평론가 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인문학의 뿌리는 문학이고 인문정신은 문화예술 행정의 근본 토대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화성의 정체성이 담긴 문학 콘텐츠를 생산하고 문학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가 쏘아 올려야 할 화성 탐사선은 아직 연료 주입도 못한 상태다. 언제쯤 본격적으로 화성을 탐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다.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도 있다.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화성시와 문학이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화성시민과 화성작가회의가 더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기를. 2020, 우리가 내디딜 화성에서의 첫발은 어떤 모습일까.

 

 

▲ 권지영 시인.     © 화성신문

 

 

제부도

권지영 시인 (2015<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누군가 두고 간 슬픔)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찾는 곳이 제부도이다. 울산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바닷가의 추억이 많아 문득 바다가 보고 싶을 때면 늘 제부도에 간다. 얼마 전에는 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날씨에도 해가 지기 전에 무작정 달려가기도 했다. 마침 바다 뒤편으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의 번짐을 보며 모든 근심이 사그라졌고 오길 잘했다고 혼자 되뇌기도 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언제나 옳다.

 

제부도는 무엇보다 섬의 주변으로 바닷물이 들어차고 빠진다는 커다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서해를 체험해 보지 않은 내게 제부도는 그야말로 신비의 섬이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원래 지구의 땅이 하나였다는 듯 섬까지의 길이 이어지고, 바닷물이 들어차면 제부도는 오롯이 섬이 되어 고립된다.

 

섬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위한 길을 낼 필요도 없이 육지와 온전히 한 몸이었으나 어느새 슬그머니 침범한 바다가 점점 몸집을 키워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바다는 이따금 섬의 곁을 비우는 시간을 두어 다른 곳으로 떠나가기를 반복한다. 바다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꼬리를 거둬들이며 사라지고 나면 물속에 가려져 있던 개체들이 꿈틀거리며 볕이 닿는 마른공간으로 하나 둘 등장한다. 젖은 몸들은 각자 생명의 구멍을 내고 발자국을 남기며 저마다의 흔적을 또렷이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의 작은 생명들은 햇볕을 누리려는 듯 여유로우면서도 분주하다. 갯벌에서의 평화로움은 위태로움과 공존하기에 다시 밀려들 바닷물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하지만 따사로운 공기와 빛은 바닷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이자 혜택이기도 하다. 이는 갯벌이나 바닷가에서 사는 생명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제부도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일상의 필름을 끊임없이 찍어 나가다 문득 마주하게 되는 쉼표와 같다. 이어짐과 깊어짐의 마주함 속에서 혼자서도 충분히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바다가 그리운 날, 섬이 되고픈 날은 제부도를 찾는다.

 

 

 

▲ 전비담 시인.     © 화성신문

 

 

화성火星탐험의 정신으로 화성華城에서 놀기

전비담 시인 (2013<8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화성의 토착민이나 거주민도 아니고 화성과 어떤 관련도 없는 내가 어떻게.

 

신설된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 회장 김명철 시인으로부터 화성작가회의 입회를 권유받고 내가 되물은 질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얼핏 화성시를 검색해보니 화성 지역에는 시정 차원의 갖가지 문화예술제가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 주도의 괄목할만한 본격 문학예술행사는 보이지 않는다. 김명철 시인이 화성작가회의 회장이 된 동기도 아마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하였으리라.

 

화성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오는 역사·문화적 유산이 다채롭고 풍부하다. 특히 화성시 지명의 유래에 얽혀있는 조선시대 정조의 개혁적 이상에 관한 역사적 유산은 일전에 경기도 안양시의 한 인문학프로젝트 작가로 참여하여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며 취재한 기억을 상기시켜주어 더욱 반가운 대목이다. 그에 더하여 흥미를 부추기는 것은 무엇보다 화성의 지정학적 입지이다. 화성의 인문학적 자원 발굴에 관한 문제의식은 제암리 3·1 독립정신의 유산과 함께 인근의 시화공단 등 생태의 문제, 서해상의 군사분계선 분쟁 등 분단 현대사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문학적 자원들이 풍부한 화성의 매력이 서울 강남지역에 주소지를 둔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화성작가회의에 매료되도록 한 이유다.

 

그동안 미리 마음을 나누어왔던 화성 인근의 다정한 동료 시인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낯가림이 심한 내게 적지 않은 힘이 된다. 그이들과 함께 하니 정감이 더해져 화성이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지도 않을 듯하다. 화성의 역사적 현장에서 채취해낼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서해 연안을 따라 북상, 나아가 남하까지 할 수 있는 통일문학 발원지로서의 화성을 꿈꾸는 화성작가회의의 놀이터, 화성에 대한 흥미와 기대로 모처럼 싱싱해지는 기분이다.

 

 

 

▲ 박미경 시인.     © 화성신문

 

 

화성에 살고 싶다

박미경 시인 (2005<정신과 표현> 등단, 시집 슬픔이 있는 모서리)

 

화성에 온 지 6개월이 넘었다. 처음 화성시에 들어온다고 했을 땐 막막한 기분이 먼저 있었다. 신도시이니 잘 살아지겠지.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적당한 삶. 그런 삶이면 되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아는 사람도 없는 곳. 아버지의 원적이 경기도 광주이고 동생들은 죽전과 분당에 각각 살고 있었지만 화성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에서 꿋꿋하게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산과 맑은 공기가 있었다. 호수도 있었다. 어딘지 낯이 익은 사람들의 순한 얼굴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달리면 사람이 만든 조형물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아파트와 건물들이 웃어주었다. 조금만 달리면 바다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유적지도 마음을 포근히 열어주고 있었다. 비운의 왕이었던 영조의 마음을 가만가만 짚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어본다. 뒤로는 무봉산이 있고 앞으로는 선납숲이 숲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잘왔어. 잘왔어. 우리 계속 행복하자. 속삭이고 있었다. 한 번 만나본 화성작가회의 회원들의 힘이 믿음직했다.

 

동탄역 부근의 카페 앞에서 울려퍼지는 스피커의 음률을 들으면서 지금이 딱 좋다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소리가 아랫배에서부터 울려퍼졌다.

나는 앞으로도 화성에서 더 행복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 박소원 시인.     © 화성신문

 

 

동탄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박소원 시인 (2004<문학선>으로 등단, 시집 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타지에서 흘러온 이웃과 자주

눈인사를 나누며 스쳐가지만

이 길 위에서, 나는 당신이 모르는 사람

당신도 언제나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흰 눈을 맞으며, 반듯한 신도시 길을 걸으며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

가슴 아픈 소식들 눈 속에 묻어둔다

길에서 나는 소리들 눈의 아픔이 되도록

 

이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발자국들

논과 밭과 옛 집터와

옛사람들 모두 사라졌다

잊고 살자는 , 고드름처럼 얼고 있다

 

얼어붙은 바람을 따라 걷다보면

네온사인 반짝이는 도심에 이르면

사라진 시간들, 얼굴들 논밭들   

내 발 밑에서 뽀드득 눈의 신음소리로 터진다

 

 

▲ 임서원 시인.     © 화성신문

 

 

반석산 에세이

임서원 시인 (2015<서정시학>으로 등단

 

단추 끄르듯 샛길 끄르면 연인처럼 와락 달려드는 숲
수풀수풀수풀 낙엽 밟는 소리가 산 근처 건물 짓는 소리를 재운다

십 수 년째 차고 시리게 몰려오는 도시
산은 엄마 잃은 애기처럼 몸 움츠렸을 테지
 
움츠려 품어낸 조팝나무 쥐똥나무 찔레꽃 부처꽃 도롱뇽 부전나비 밀잠자리... 이런 식이면 해 넘어갈듯해서 그만 두지만
 
그만 둔 시를 놓고 잠든 홍사용 묘지근처
청설모가 물어다 나른 문장을 연리목 쉼터 평상에 펼치면
소쩍새와 꿩의 울음소리는 시가 되므로
몇 편의 시를 읽는다
 
읽다 어릴 적 기억의 샛길에서
오래된 약속처럼 길을 잃는다
 
길 끝에서 한 줄 문장을 만지작거리다 만난 청설모에게
-너는 어느 문장에서 나왔니?
청설모보다 먼저 다른 기억으로 건너뛴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부엌문을 열어보니 멧돼지가 먹을 것을 찾고 있었어.
무장애길 벤치에 십년쯤 떨어져 앉은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시작하신다
이야기 끝쯤에 길을 잠가 기억을 가둔다
 
사라짐과 잊혀짐 그 간극사이를 붙들고 있는 반석산에 오르면
내 안의 내륙 아주 오래된 약속이 있다

 

 

▲ 김명은 시인.     © 화성신문

 

 

고라니와 함께 살아요

김명은 시인 (2008<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 팔)

 

친구들과 올봄에도 냉이와 달래 쑥 엄나무순 등 봄나물을 캐러 갔다. 매연이 적은 화성의 남양 어느 산자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산 속에 너른 평지가 있는데 해마다 온갖 풀들이 새로 돋아난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공기도 좋고 먹을거리도 안전할 거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쑥을 뜯고 있는데 뭔가 와다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놀라 달아날 필요가 없는데 고라니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무서운 동물일 것이다. 인간은 못 먹는 게 없고, 사자 호랑이 맹수들도 동물원에 가둬놓고 구경하는 동물이다.

 

남양에는 노루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노루보다는 고라니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곳 주민들의 밭작물 피해가 크다. 나도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시인을 아는 덕에 콩과 옥수수 감자고구마를 심어본 적이 있다. 콩을 심고 나서 얼마 후 싹이 났는데 고라니가 그 싹을 다 먹어치워 버렸다. 바닥에서 다시 싹이 올라왔지만 콩꽃도 제대로 못 피고 콩농사는 망했다. 고구마농사 역시 망했다. 마을 주민들은 회의를 했다. 주민들은 총으로 고라니를 잡아버려야 한다고 했고, 시인은 절대로 총으로 고라니를 잡아서는 안 된다 고성이 오갔다고 했다.

 

그 후 총으로 고라니를 잡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사람과 고라니와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로가 뚫리고 도시가 생기고 숲과 들판이 사라져 먹이를 잃은 고라니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작은 생명 하나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 그런 일들이 시인의 역할중 하나일 것이다. 주민들은 밭가에 울타리를 높이 쳐놓고 농사를 짓고 있다.

 

화성시는 궁평 전곡 제부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무분별한 개발 탓으로 길가나 밭 산자락 어디든 공장이 들어서 있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이다. 서울의 1.4배 넓은 땅을 가진 화성은 앞으로 개발이 계속 될 것이다. 이왕 개발을 한다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친환경적 도시라면 좋겠다. 지친 도시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그런 맑은 도시를 기대해본다.

 

 

▲ 인은주 시인.     © 화성신문

 

 

이름을 돌려주고

인은주 시인 (2013<시조시학>으로 등단, 시집 미안한 연애)

 

십여 년 전 동탄신도시의 입주민이 되어 화성에서 살게 되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어디 사느냐라는 질문에 화성대신 동탄이라 말했다. 화성이라고 하면 그 무서운 동네라는 반응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십대를 보낼 때 화성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났다. 고향 집을 떠나 도시에서 유학을 시작하던 그 시절, 간간이 들려오던 끔찍한 이야기.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 하였고 이런저런 괴담들이 쏟아졌다 그로 인해 어쩌다 늦는 귀갓길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두 잘 알다시피 그 사건은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세상에 알려졌는데 영화 속 송강호가 들여다보았던 농수로를 일부러 찾아가 들여다본 것은 나에게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곳은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냥 농수로였다.

 

드디어 지난해 숨어있던 범인을 찾아냈다. 범인이 잡히자 그 사건은 호출되어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같은 연배 남성은 삼십 년 전, 그때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더러 그 사건이 정서적으로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10차례에 걸쳐 대부분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의 대상이 모두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을까?

 

삼십여 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 화성은 연쇄살인사건을 이춘재에게 돌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이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의 효심과 개혁사상으로 시작된 빛나던 화성은 삼십여 년 동안 오염된 이름을 어떻게 벗겨 낼 수 있을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한 달 전쯤 대구는 대구 코로나라고 부르지 마라고 분노했다. 어느 누가 나쁜 이름을 원할까? 한번 찍힌 이름, 그것은 이름일 뿐 삶은 그 안에서 모두 신성하다. 이춘재가 망가트린 피해자의 가족들도, 코로나가 망가트린 수많은 가족들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살아내야 하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름을 돌려준 지난해에 화성작가회의가 결성되었다. 화성의 삶은 이어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 화성이란 이름을 어떻게 쓸까?

 

 

 

▲ 정옥선 시인.     © 화성신문

 

당성의 파도 소리를 찾아

정옥선 시인 (2014<시조시학> 등단, 시조집 딴죽)

 

수원에서 화성으로 이산 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화성은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와 어우러지는 궁평항과 전곡항이 있는 지역이다. 서신면에 위치한 당항성이라고도 불리는 당성 또한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당성을 처음 알게 된 건 최정례 선생님과 문학기행으로 갔을 때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당성과 공룡알 화석지를 둘러보며 화성시청에 근무하는 분의 해설을 들었었다. 그 당시 당성을 오르는 길에 여러 종류의 들꽃을 보며 걸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아마도 봄이 완연한 이맘때였으리라 짐작해본다.

 

맑은 날 당성에 올라서면 서해가 조그맣고 희미하게 보인다. 바닷물이 당성 아래까지 들어왔었다는 말이 실감은 안 나지만 위치상으로 중국과 교류하던 삼국시대의 요충지라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은 복원작업이 한창인 구역을 제외하고 탐방로를 따라 산성을 오를 수 있게 조성해 놨다.

 

당성 정상에는 망해루로 추정되는 초석이 남아 있다. 잠시 벤치에 앉아 그 옛날 당성 아래에서 들리던 바닷물 소리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정리 :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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