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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발적 변절과 타발적 변절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8/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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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예외가 없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응하기 위해서나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자기의 색깔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변절이 일어나기도 한다. 존재의 섭리다. 섭리의 밑바탕에는 생존 본능이 깔려 있다. 간혹 생존 본능을 버리고 오롯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려다 고고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받아야 할 귀한 사람들이다.

 

화성시가 추진하다 친일 논란이 일어 중단된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 사업의 재추진 여부를 둘러싼 핵심 본질도 홍난파라는 한 인간의 변절이다. 변절에도 두 가지가 있다. 자발적 변절과 죽지 못해 변할 수 없는 타발적 변절이다. 동족을 힘들게 하는 악행으로 이어지는 자발적 변절은 욕먹어 마땅하지만, 외부 압력에 의한 부득이한 타발적 변절은 오히려 측은지심이 발동돼야 할 대상이다. 홍난파의 변절을 자발로 볼 것이냐 타발로 볼 것이냐에 따라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 사업도 운명이 갈리게 된다.

 

홍난파의 업적은 대단하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국민 작곡가다. 예술의 전당이 국민 애창곡으로 선정한 40개 노래 중 다섯 개가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작품이다. ‘울밑에서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하는 봉선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봄처녀, 옛 동산에 올라, 사랑, 성불사의 밤은 또 어떤가.

 

홍난파는 종로경찰서에서 72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상 전향서를 썼다. 자발적인 창의력으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일본 경찰이 내놓은 인쇄물에 사인을 하는 수준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모진 고문을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이삼일은 견딜 수 있을까. 역지사지를 해보면 답이 나온다. 타발 전향 홍난파를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화성시의원들은 홍난파의 변절을 타발로 보는 것 같다. 여야를 막론한 대여섯 명의 시의원들이 중단된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 사업을 다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판단의 최종 정점에 있는 법원의 타발성 전향에 방점을 찍은 판결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름의 가치는 각각 다르다. 홍난파 이름이 갖는 가치는 위대하다. 순풍을 타고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이 완료되면 주목받을 만한 랜드 마크가 될 공산이 크다. 화성시 입장에서는 문화 메카라는 영광을 덤으로 얻게 된다. 이보다 더한 꿩 먹고 알 먹고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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