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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난파 홍영후를 생각하며(下)]
난파 기념관, 근대음악 구심점 될 것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10/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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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왕로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화성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화성신문

모차르트 무덤에는 시신이 없다. 사망 후 공동묘지에 급하게 묻히는 바람에 시신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객사한 비발디는 기념비만 있다. 무덤이 있던 곳에 비엔나 공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이든의 경우,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당시 나폴레옹 군이 비엔나를 점령하던 어수선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평화로운 시절에 성대한 묘지로 이장하려고 무덤을 파헤치니 시신의 머리가 없었다. 모두가 경악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죽은 천재들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와 자손들의 머리가 천재처럼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도둑맞아 사라졌던 하이든의 머리는 무려 145년이 지나서 제 2차 세계대전 후 겨우 찾아서 온전히 입관되었다.

 

이처럼 시신도 제대로 없는 무덤이지만,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 거장들의 흔적을 찾는다. 난파 홍영후도 화장을 했기 때문에 무덤이 없다. 난파는 우리나라 근대음악가들 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품과 작품을 남겼다. 난파의 흔적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관광객들이 줄을 설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는 호세 아브레우 박사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스타브 두다멜은 세계적인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에딕슨 루이스 등 걸출한 연주자들을 양성했다.

 

역사적으로 화성시는 세종대왕 시절 장영실이 건달산에서 경석을 채굴해 남양 도호부에서 편경을 만들었던 음악의 본향이다. 그 화성시에 호세 아브레우 박사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 있다. 난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추진되다 친일 논란으로 멈춰선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 사업’ 재개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정희준 (재)송호·지학장학재단 이사장이 바로 그다. 그는 ‘고향의 봄 꽃동산’이 세계 음악의 메카가 될 수 있는 음악적 가치가 있는데다, 통일 후 남과 북의 화합을 이루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핀란디아를 작곡한 음악가 시벨리우스는 판란드인의 애국심을 이끌었고, 시벨리우스 음악원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샤바에 있는 쇼팽 음악원은 고국을 평생 그리워한 작곡가 쇼팽을 기념한다. 베르디는 오페라를 통해서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소망하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이끌어 냈다. 밀라노에 베르디 음악원이 있다. 

 

바로크시대 음악가 장 필립 라모는 루이 15세, 16세 시절 바스티유 궁전악단 지휘자로 프랑스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의 고향 디종에 위치한 국립 음악원의 이름은 장 필립 라모 음악원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는 1989년 통일 독일을 바라는 시민들이 경찰의 무력 진압에 맞설 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비폭력 평화시위를 당부했다. 게반트하우스에 시위 군중을 피신시켜 유혈사태를 막기도 했다. 마주어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 독일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지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서 지휘자의 길을 계속 걸었다. 마주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으로 참전했지만 타의적인 상황이었으므로 그의 인생진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난파의 이름을 기리는 여러 단체와 음악제, 콩쿠르가 있지만 그를 기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는 부족하다. 홍난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음악가이지만 직접 그의 작품을 연주해 보면 천재적인 작곡가임을 알 수 있다. 난파는 동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론서적 발간과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독보적인 인물이다. 

 

화성시에는 아직 전용 콘서트홀이 없다. 관내 대학교에 벨칸토아트센터가 있고, 다목적으로 지어진 중소규모의 화성아트홀, 반석아트홀, 누림아트홀이 있는 정도다. 트라이엠파크라는 공연장도 건설 중이다. 

 

‘고향의 봄 꽃동산’에 난파 기념관이 호주를 상징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지어진다면, 화성시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를 넘어 대한민국의 문화 메카로 부상할 수 있다. 난파 기념관은 연주 장소나 전시관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음악사를 조명하기 위해 지어져야 한다. 제대로 지어질 필요가 여기에 있다.

 

난파 기념관이 제대로 지어지면 흩어져 있는 난파 기록물과 유품을 비롯한 근대 음악가들의 기록물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다. 또 그렇게 지어진 건축물은 시간적인 예술인 음악에 불변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난파를 추모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를 만날 수도 있다. 난파를 비롯한 근대 음악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연구하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kingro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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