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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화성춘추 (華城春秋) 73]부모가 창조하는 가정환경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10/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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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교육학박사     ©화성신문

고등학교 학부모 모임의 한 상황이다. 반장 엄마가 자신의 딸은 어렸을 때 너무 착해 항상 손해를 보았으며, 이를 극복시키고자 다른 사람의 공격에 심리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 때부터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고등학생인 딸이 학급 대표로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다른 학부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쳤는지 방법을 물었다. 방법의 요지는 이러했다. 타인이 심리적으로 공격해오기 먼저 다른 사람을 공격하게 했으며, 필요하다면 욕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하면서 딸을 키워낸 무용담을 신나게 펼쳐냈다. 반장 엄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임이었다.

 

겸손, 양보, 질서, 정직, 존중, 배려 등은 민주사회 구성원에게 중요한 사회적 덕목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식으로 자녀를 키우면 자녀가 약해지고 손해 본다고 걱정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오히려 자만, 교만, 이기심 등을 가르치는 것이 사회에 더욱 적응하기가 용이하다고 보는 부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걱정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일까? 

 

예전의 영화나 드라마의 기본 골격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다. 그래서 시시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착한 사람은 이기고 악한 사람은 망한다는 뻔한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권선징악을 포기하고 권악징선의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력은 크다.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영화의 내용은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그러한 가치를 은연중에 새기게 되는 위력이 있다. 그러나 요즘 영화를 보면 선과 악의 결말이 모호해지고 있다. 인터넷 상의 댓글을 보더라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리는지 혼란스럽다. 개인이 가진 생각에 따라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된다. 이른바 가치의 혼란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관성 있는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덕적 덕목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겸손, 양보, 배려가 미덕인 줄 알았는데, 바보 취급당하여 따돌림 당하는 원인이 된다면 자녀에게 이를 가르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에서 가치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늘날 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이전 부모보다 더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늦추는 이유가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자녀 양육에 대한 능력 함양이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스스로 조절하게 하는 법칙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연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법칙이다. 자연법칙은 신(神)이 창조한 영역이기에 일관성이 있다. 이러한 일관성 있는 자연법칙에 따라 인간의 행동은 항상 예측 가능해진다. 만약 신들 간에 분쟁이 발생해 자연법칙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해가 떠야 할 시간에 뜨지 않고, 사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인간은 신들이 서로 갈등을 느끼지 않도록 바라야 할 뿐이다. 신들은 자연법칙이라는 법전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주지 않았다. 오로지 도전과 응전이라는 체험을 통해 인간 스스로 습득하도록 해 주었다. 그 대신 자연의 응전은 변함없고 일관성이 있어 인간이 스스로 법칙으로 수용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신이 자연을 창조해 자연법칙으로 생활하게 하였듯이 가정도 유사한 점이 많다.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있어 신이다. 부모는 자녀를 창조(?)했을 뿐 아니라, 자녀를 위해 가정이라는 환경을 창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생활법칙은 자녀에게 있어서 자연법칙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신이 자연법칙의 경전을 만들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탐색하게 했듯이, 부모도 가정법칙의 경전을 만들지 않고 자녀 스스로 탐색하게 하고 있다. 어린 자녀들은 설명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오감을 통해 들어온 관찰과 모방, 느낌으로 학습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최초의 선생님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가르침은 두뇌 속에 새겨져 평생을 좌우한다. 청소년기에 배운 지식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과 같이 필요한 경우 한 번씩 활용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유아기까지 습득한 지식은 두뇌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여 무의식중에 행동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심리학자 아들러(Adler)가 만 5세경까지 기초 생활양식을 형성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다. 여기서 부모의 일관성 있는 행동이 중요해진다. 부모의 행동이 일관성 없이 뒤죽박죽이라면 자녀는 생의 출발점부터 혼돈으로 가득차게 된다. 여기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녀 스스로 올바른 삶의 규칙을 체험을 통해 학습하도록 일관성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으신가요?’

 

가정의 규칙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가훈(家訓)이다. 그러나 가훈을 멋진 액자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실천하지도 않고, 숙지하지도 않는다면 하나의 먼지 쌓인 장식품에 불과하다.

 

가정은 사회에 속한 가장 작은 단위다. 그러므로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법칙이 혼란스러우면 일관성 있는 교육에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즉 영화, 드라마, 출판물, 인터넷 등에 존재하는 법칙은 다양성을 유지하더라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자연법칙이 생존의 틀 안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면, 사회법칙은 생활의 틀 안에서 권선징악의 법칙으로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진정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들의 마음에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먼저 공격하게 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사회는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syhaa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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