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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의 아름다운 문화·문화재를 찾아서② 탄요유적지
동탄1신도시 탄요유적지는 삼국시대 부흥의 상징
철기 생산 원료 백탄 생산경제 부흥 뒷받침
탄요유적지 활용한 교육 사업 활발, 숯가마터 건립 추진도
 
서민규 기자 기사입력 :  2022/01/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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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존되고 있는 탄요 유적지.  © 화성신문

 

 

 

  © 화성신문



화성시하면 생각나는 문화 유산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융·건릉으로 대표되는 정조와 관련된 역사일 것이다. 

안녕동 소재 융·건릉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의 능인 건릉을 이르는 말이다. 당초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에 안장됐던 사도세자의 묘는 1789년 정조 1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융·건릉이 화성시 대표 문화재로 손꼽히는 것은 정조의 ‘효(孝)’ 문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매년 아버지를 찾아 화성을 방문했던 정조의 능 행차는 이제 화성시와 서울시, 수원시가 함께 재현하는 전국적인 축제가 됐다. 죽음 이후에도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를 잊지 못했던 정조는 결국 아버지 곁에 묻혀 생전 못하단 효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역사를 담은 융·건릉을 찾은 시민들은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 숲길을 건너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천년 고찰 인근 용주사를 함께 찾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처럼 화성시에는 융·건릉 등 조선시대의 유물만이 존재할까? 오히려 오래전 삼국시대의 유물도 함께 계속해 발견되고 있다. 

 

먼저 남양만에서 출토가 계속되고 있는 당성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성은 화성이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이다. 이곳에서는 여러 차례 증개축된 대형 건물지에서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이 발굴됐다. 

 

지난해 5월 당성 7차 정밀 발굴 조사에 나섰던 안신원 한양대학교 박물관장은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 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며 “당성은 행정적, 군사적 거점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요 기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성과 더불어 삼국시대 화성이 융성했다는 기록은 또 있다. 지금은 인구 40만 명을 넘어서는 대도시로 성장한 동탄1신도시에 유치한 탄요 유적지다. 

 

청동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서는 삼국시대는 고대 국가 체계가 만들어지는 초기여서 철기의 보유 유무와 양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철기를 만들어 내는 곳은 당연히 가장 중요한 국가 지역 중 하나였다. 화성 동탄1신도시 현재 동탄국제고등학교 인접 지역이 삼국시대 백제가 소중한 철기를 만들어내는 지역이었다. 

 

▲ 탄요공원의 상징물.  © 화성신문


동탄1신도시 개발 전 이곳은 농사를 짓던 구릉지역이었다. 그러나 동탄1신도시가 2004년 (구)동탄면 석우리, 반송리 일원에서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삼국시대의 유적인 탄요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한국토지공사는 지반 정지 작업 중 문화 유산을 발견했고, 문화재청은 관련법에 따라 2004년 2월10일~2005년 5월18일 문화재를 복원했다. 이 결과 경기문화재연구소는 동탄1신도시 개발지구에서 탄요를 비롯한 26개소의 유물 매립 지역을 확인했다. 유물도 청동시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고분은 수백 개소였고 석우리 먹실마을에서는 삼국시대 밭유구도 발견됐다. 동탄신도시가 현재의 서울로 가기 전 교통 요충지로서 번창했다는 증거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철기를 생산할 수 있는 숯가마, 즉 탄요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탄요는 철을 제련할 수 있는 백탄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동탄이 삼국시대 요업과 철기 생산 등 생산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동탄1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발견된 탄요는 경기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발굴된 의미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당시 지명을 차용해 ‘화성 반송리 행장골유적’으로 정해졌다.

 

지금이야 다양한 화석 연료를 통해 높은 열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숯을 만들어 열량을 높이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었다. 직접 불을 때는 연소부부터, 연기를 빼 내는 연도부 등 모든 시설 하나하나가 높은 기술력이 필요했다. 이곳에서는 총 3기의 탄요 유적지가 발견됐는데 규모로 봐서 더욱 번성한 백탄 제작지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현재 3곳의 발굴된 유적지 중 상태가 가장 양호했던 2호기는 주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조성됐고, 1호기는 매립 보전 결정이 내려졌다. 

 

동탄1신도시를 개발중이었던 한국토지공사는 유적지를 보전하기로 하고 총 57억 원을 들여 ‘탄요유적공원’을 조성한 후 2008년 8월 화성시에 인계했다. 이같은 탄요유적공원은 이제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든 동탄의 옛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시설이 됐다. 

 

화성시 관계자는 “동탄1신도시에서 발견된 탄요 유적지는 1천년 전 융성했던 지역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전국 최고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동탄신도시와 닮았다”면서 “나무로 만들어진 숯이 결국 더욱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내듯이 동탄도 점점 더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탄요공원은 한때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제는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교육 기관 역시 탄요공원을 활용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화성교육협력지원센터는 동탄 탄요유적지를 활용해 교육에 나섰고, 화성시도 탄요를 활용한 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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