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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12]보라데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5/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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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시지부 사무국장     ©화성신문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휘두르는 흉기에 사람이 상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우리 사회는 맹목적인 혐오와 폭력사회가 되어버린 게 틀림없다. 이러한 극단적 분노조절장애 사회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우리는 몇 개의 답을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폭력의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악영향의 힘을 가진 작은 씨앗이 가정폭력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 구성한 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알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위기가정과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매월 8일을 보라데이로 정했다. 이날 각 지자체의 관련 단체들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과 관련하여 다양한 캠페인 행사를 벌이며 가정폭력·아동학대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경종을 울린다. 올해로 10년째인데도 폭력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보라데이의 '보라'는 가정폭력·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자의 조기 발견을 위해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뜻이다. 

 

가정폭력은 신체·물리적 폭행뿐만 아니라 언어폭력과 심리적 정서적 폭력, 성적 폭력, 경제적 폭력 등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며 부모의 지나친 훈육과 체벌도 가정폭력으로 규정된다. 이 모든 폭력은 거의 한꺼번에 일어난다. 가해자가 알코올 중독이나 의처증·의부증 같은 ‘병증’이 있을 때는 폭력의 정도가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가정폭력은 사적이고 친밀한 가족 간에서 일어나므로 은폐되기 일쑤다. 자녀가 부모를 구타하거나 살해하는 존속범죄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가정폭력을 사적인 가정사 문제로 치부하는 안일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가해자에 대한 보다 엄격한 처벌 체제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술취한 밤이 담장을 오른다. 대문을 열지 못하는 식탁의자가 담장을 긁어댄다.// 담장은 모든 별을 꽉 쥐고 빙빙 돌리며, 몰려왔던 것이 몰려가는 것처럼 시작된다. 고양이 발톱이 허공을 갈아엎는다. 창문은 공중에 떠올라 부끄러움을 데리고 멀리 달아날 것이다. 언젠간 끝이 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양이 털이 운다. 갸르릉- 우는 털끝이 극지까지 달려갈 때 땅을 물고 숨죽이고 있는 담장 밑 아이들 소름 돋는 소리. 작고 여린 것들의 숨소리에선 쇠비린내가 난다.// 도망 나온 힘없는 손톱들이 담장을 긁고 있다. 아무리 긁어내려도 내려오지 않는 벽. 다행이다 감정이 사라진 손톱에선 피가 나지 않는다.// 담벽이 끝나면 핏기 없이 일어서는 새벽빛. 담장 밑에 부러진 손톱조각들이 수북한 건 초침소리가 벽시계를 썰고 있기 때문이다.// 덜미가 잡힌 아침은 머리카락과 눈물이 뒤엉킨 맛으로 식탁 의자 밑에 무릎 꿇려 앉아 있다. 아침 식탁의 색깔이 어린 당나귀의 입김 같아진 건 밤의 얼굴 맛이 소금 맛이 되고 난 후였던 것 같다.// 담장이 끝이 났어도 아이들의 모퉁이는 달려가려 한다./ 밤이 끝나도 밤이 계속되는 백야의 어느 날 쪽으로./ 미리 담장에 갇혀버린, 오래 파괴된 어느 날 쪽으로.

 

-전비담 시 「계속해서 달리려 하는 아이들의 모퉁이」

 

모든 폭력은 범죄다. 그중에서도 가정폭력은 최악의 범죄다. 사회적 폭력 범죄를 낳는 작지만 거대한 씨앗이기 때문이다. 폭력가정에서 폭행과 무시와 모욕을 당하며 자란 아이들은 계속해서 폭행과 무시와 모욕의 바톤을 이어달리기하게 되어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랑과 존중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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