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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9/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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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 교수     ©화성신문

괴물의 탄생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있다. 미국의 괴물 ‘에이리언’이나 ‘프레데터’를 먼저 살펴보자. 헐리우드의 괴물들은 대체로 지구의 바깥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일종의 외계 생명체로 출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울타리 바깥에서 미지의 존재가 목숨을 위협하며 등장하는 것이다. 울타리의 바깥에서 괴물이 출현하면 울타리 내부의 사람들은 일단은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민족이나 인종이 다르고, 때론 서로 적대시하는 국가나 사람들도 일단 외계의 위협 앞에서는 단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미국은 전 인류를 대표하는 국가로 자임된다. 미국은 공포스러운 괴물에 맞서 지구의 방위를 수호할만한 거대 규모의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을 앞세워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전방에서 맞선다.

 

따라서 바깥 세계로부터 발생한 괴물의 탄생이 함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분명하다. 이는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지구)의 질서에 더욱 충실하고 인류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패권 국가의 ‘보호’에 위안을 느끼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적 가치를 자명한 원리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때 세계의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급 투쟁이나 인종 차별, 젠더 갈등 등은 사소한 분란으로 역사에서 지워진다.

 

일본의 괴물을 대표하는 ‘고지라’는 어떠한가? ‘고지라’는 미국의 핵실험 때문에 진화를 이룬 고대 생명이라는 설정을 갖고 태어났다. 일본의 서브컬처 연구자 우노 츠네히로에 따르면 ‘고지라’는 냉전체제를 지배하는 핵의 힘을 괴수라는 허구의 존재로 표현한 결과라고 한다. 패전국의 수도인 도쿄를 파괴하는 ‘고지라’는 미국의 원자력(≒핵) 기술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의 기저에는 물론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한 기억과 경험, 트라우마 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고지라’는 핵무기의 다른 이름이며, 과학기술과 원자력의 전쟁 이용을 표상하는 괴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봉준호의 영화 ‘괴물’은 앞서 언급한 헐리우드의 괴물 서사와는 근본적으로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봉준호의 ‘괴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울타리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속한 바로 그 세계의 내부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내부로부터 괴물이 발생하면, 그때까지 해당 사회를 지지하고 있던 지배적 가치와 질서 등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던 바로 그 사회의 헤게모니와 본질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괴물 서사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역시 분명하다. 괴물이란 외계로부터 침입하는 미지의 존재로만 현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로 그 자신의 손으로 만든 괴물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를 수 있을까? 나는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먼저 생각난다. 주지하듯 히틀러가 권력을 확보한 것은 강압적인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 의해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이었다.  민주적 절차에 입각한 가장 반민주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히틀러는 독재 정치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법 제정을 대부분 국민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승인받았다. 그의 선전·선동은 독일 국민들의 만연한 불안을 적확하게 파고들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통치권자를 필요케 됐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들 스스로 괴물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는 분명 종교가 아니다. 맹목적인 추종이야말로 괴물의 탄생을 추동한다. 히틀러라는 비극적 사례는 독재 역시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권력이 괴물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자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 권력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란 자신을 향한 지지가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잠재적인 위기여야만 한다. 권력이 민주주의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괴물이 탄생한다. 이 시대의 괴물은 과연 누구인지, 혹시 그 괴물을 바로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두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요즘 아니겠는가. 

 

with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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