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봉 아 K-POP뮤지엄추진위원회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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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신문 |
화성의 너른 들녘이 봄기운을 머금기 시작한 2026년 3월의 어느 날, 서신면의 ㈜현무개발 사무실에서 이봉아 K-POP뮤지엄추진위원회 후원회장을 마주했다.
‘효도와 평안’을 뜻하는 호 ‘효안(孝安)’처럼, 그녀의 미소에는 모진 세월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
일 중독자 남편의 그림자가 되다
이봉아 회장의 화성 인생은 1980년, 서신면 장외리로 시집을 오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척박했던 시골 마을에서 그녀를 기다린 것은 끝도 없는 농사일과 남편의 건축 사업 내조였다.
자수성가하여 성격이 강했던 남편은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 그녀는 거머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논에 들어갔다가 물려 밤잠을 설쳐가면서도 남편을 따라다니며 묵묵히 일을 도왔다. 남편은 새마을 지도자와 명예 경찰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에 앞장섰지만, 정작 아내인 그녀에게는 쉼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제부도가 지척인 동네에 살면서도 남편은 10년 만에 저를 그곳에 데려갔어요. 오로지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죠.”
그녀는 남편의 건축 현장을 밤낮으로 지키며 자재를 챙기고, 일꾼들에게 장갑과 담배를 나눠주며 현장의 살림꾼 역할을 자처했다. 그런 그녀의 진심에 일꾼들은 “딴 집에는 안 가도 이 집 일은 하러 간다”며 모여들었다.
이후 부부는 수원에 땅을 사고 집을 지으며 경제적 자립을 일궈냈다.
사별의 아픔을 딛고 피어난 ‘봉사’의 향기
2013년, 평생의 동반자였던 남편이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그녀의 삶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에 매몰되는 대신, 남편이 못다 한 사회적 책임을 이어받기로 했다. 60대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중앙대학교 부동산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고,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따서 봉사활동을 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특히 남양로타리클럽 회장으로 봉사할 때 필리핀의 낙후된 지역을 찾아 장애 아동들에게 휠체어를 기증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지하수 개발을 도왔던 경험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국내에서도 그녀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악취가 진동하고 쓰레기가 쌓인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 망설임 없이 청소 도구를 들었고, 낡은 벽지를 뜯어내며 어르신들의 외로운 마음까지 보듬었다. 이후 남양로타리클럽 회장과 화성1지역 대표를 역임하며 지역 리더로서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봉사를 마친 뒤 어르신들이 지어주시는 환한 미소를 볼 때면, 제가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큰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뿌듯함이 저를 다시 현장으로 이끄는 힘이죠.”
가왕 조용필, 그리고 ‘K-POP뮤지엄’의 꿈
현재 이봉아 회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K-POP뮤지엄(조용필 뮤지엄)’ 건립이다. 가왕 조용필은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온 화성의 자존심이자,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신화다.
그녀는 약 5~6년 전부터 ‘문화공작소 꿈’을 중심으로 민간 차원의 선양 사업을 주도해 왔다. 추진위원회의 노력은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송산초등학교 교정에 조용필 노래비를 건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조용필 씨는 화성 송산이 낳은 보물입니다. 송산 포도 외에 이렇다 할 문화 콘텐츠가 부족한 이곳에 대중음악의 성지를 만들어, 전 세계 팬들이 찾아오고 지역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녀는 올해부터 제부도와 궁평항 등 화성의 명소에서 조용필의 음악을 주제로 한 버스킹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추진위원회는 궁평항 인근의 유휴 부지를 활용해 대규모 뮤지엄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만 추진하기엔 벅찬 일이기도 하다.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
이봉아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권위 없는 리더’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세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어디서든 앞장서서 궂은일을 도맡기 때문이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있는 데 가면 어른 대우 받는 것보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그냥 제가 앞장서요. 뭐든지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다들 좋아라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뒤돌아보니까 남는 건 사람들뿐입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곁에는 늘 사람이 넘쳐난다. 로타리 클럽의 후배들부터 문화원 관계자들, 그리고 그녀를 ‘큰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지역주민들까지. 그녀가 베푼 진심은 수많은 인연의 줄기로 이어져 화성 사회의 단단한 네트워크가 되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오십 대의 열정으로 화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이봉아 회장. 그녀가 꿈꾸는 ‘조용필 뮤지엄’이 화성시의 새로운 문화적 랜드마크로 우뚝 서는 날, 그녀가 짊어졌던 삶의 십자가는 비로소 가장 화려한 꽃으로 만개할 것이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