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우리꽃식물원 온실에 들어서니 어느새 진달래와 복수초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풍기는 흙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아무리 최신 스마트폰의 1억 화소 카메라로 고해상도의 예쁜 꽃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아도, 매끈한 화면 너머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생명력 가득한 ‘봄의 냄새’입니다.
벌써 3월 중순을 지나갑니다. 겨우내 입었던 두터운 롱패딩을 훌훌 벗어 던지고 간편하고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긴 했지만, 아직 밤샘 촬영이 이어지는 현장의 공기는 제법 차갑고 매섭습니다. “아이고, 춥고 고되다”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도, 스태프들과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나누어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의 온기에 ‘그래도 해가 나면 따뜻하구나’ 하며 빙그레 웃게 되는 요즘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입니다.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취업, 연애, 인간관계 등 도시의 차갑고 인스턴트 같은 치열한 삶에 지쳐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직접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 거둔 작물로 정성껏 밥을 지어 먹습니다. 봄동 겉절이를 무치고, 아카시아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 그 모든 ‘과정의 불편함’이 오히려 혜원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줍니다.
반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 명목하에 삶의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려 합니다.
배달 앱으로 버튼 하나면 음식이 문 앞에 오고, 2시간짜리 명작 영화도 10분 요약 영상으로 줄거리(결과)만 섭취하려 듭니다. 땀 흘려 얻는 과정은 사라지고 화려한 결과물만 남은 삶은 어딘지 모르게 허기집니다.
삶의 진짜 곰삭은 맛은 그 생략된 불편함 속에 숨어 있는 법인데 말이지요.
주제를 살짝 돌려볼까요? 요즘 IT 업계에서는 2026년의 핵심 트렌드로 단연 ‘피지컬 AI(Physical AI)’를 꼽습니다. 지금까지의 AI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사람처럼 로봇의 ‘몸’을 입고 현실 세계로 나와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기계를 조작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무섭도록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피지컬 AI가 수십만 장의 데이터를 처리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비율로 밭을 갈 수는 있겠지만, 기계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감각’입니다.
갓 버무린 봄동 겉절이의 아삭하고 매콤한 식감, 맨발로 부드러운 흙을 밟았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짜릿한 차가움,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봄바람의 내음은 오직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몸’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 기계는 센서로 온도를 측정하고 데이터를 ‘처리’할 뿐, 생명의 온기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혜원이 한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싹을 보며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벅찬 감동을 어떻게 AI가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AI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대신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와 아날로그적인 감각을 더욱 간절히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 쉽고 빨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의 오감은 오히려 둔감해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잠시 스마트폰 전원을 꺼두고 완벽한 ‘디지털 디톡스’를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지역 화성시에는 훌륭한 자연 공간들이 참 많습니다. 화성시 일원에 한창 조성 중인 ‘보타닉가든 화성’의 산책로를 유유자적 걸어보셔도 좋고, 가까운 우리꽃식물원의 흙길을 살포시 밟아보셔도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걷는 속도는 조금 느려지고 무릎은 시릴지 몰라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세상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만큼은 그 어떤 최첨단 AI보다도 깊고 예민하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봄이 태동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흙의 감각을 깨워보십시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살아있음’의 특권을 온몸으로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자, 여러분의 인생 영화, 진짜 클라이맥스는 지금부터입니다. 레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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