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애경 보자기 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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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점구 세자로,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화인규방’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은은한 전통차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이 빛을 발하는 작업실이자,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전통의 미를 감상하는 찻집이기도 하다. 이곳의 주인인 김애경 명장은 지난 12월, 화성특례시 보자기 명장으로 선정되며 그 실력과 열정을 공인받았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렇게 예쁜 보자기’
김애경 명장과 보자기가 인연을 맺은 것은 40대 중반 무렵이었다. 고인이 된 허동화 자수박물관장의 저서 ‘이렇게 예쁜 보자기’를 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었다.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잊고 살았는데, 조각보를 대하는 순간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했었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서울의 전시장과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기초를 다졌습니다.”
다양한 규방공예 공모전을 통해 최우수작품상 등 여러 차례 수상하며 규방공예의 기틀을 닦은 그녀는 이후 경기도 무형유산 자수장 황순희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전통 자수의 깊이까지 더하게 됐다.
쓸모없는 조각이 아름다운 예술로
조각보의 근원은 ‘아끼는 마음’에 있다. 옛 어머니들은 안채(규방)에 모여 한복을 짓고 남은 작은 자투리 천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모았다. 곡선으로 마름질하고 남은 쓸모없어 보이는 조각들이 어머니들의 손끝을 거치면 세상에 하나뿐인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옛 어머니들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면 분할과 색채 감각으로 조각보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옛 유물을 최고의 스승으로 모십니다. 유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현대적인 창작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조각과 조각을 이어 보자기를 만들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 인연을 만든다”는 그녀의 모토는 곧 그녀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그녀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당에서 직접 천연 염색을 하기도 한다. 애기똥풀이나 쑥, 쪽풀 등을 삶아낸 물에 천을 담그고 직접 밟아가며 색을 입히는 과정은 고되지만, 빨랫줄에 널린 오묘한 빛깔의 천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직접 염색한 천들은 다시 조각조각 나뉘어 그녀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전통의 미(美), 세계를 매료시키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7년 한국예총 조각보 명인으로 선정된 이후, 프랑스, 러시아, 일본, 미국, 핀란드 등지의 전시회에 참가하며 우리 규방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특히 앞뒤 구분 없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홑보’의 섬세함에 외국인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최근 다녀온 핀란드 라흐티 전시에서는 현지 시장이 직접 방문해 격려하고, 색소폰 연주자가 작품 하나하나 앞에서 연주를 바치는 특별한 퍼포먼스를 경험하며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외국 작가들과 교류하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이 소중한 전통을 더 많이 이어받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큽니다.”
지친 마음을 보듬는 ‘치유의 바느질’ 계획
김 명장은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바로 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위한 ‘치유의 바느질 교육’이다. 과거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녀가 느낀 것은, 정작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장애 당사자보다 그들을 24시간 케어하는 보호자들이라는 점이었다.
“장애인 부모님이나 보호자들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분들에게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힐링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김 명장은 최근 나래울 복지관 관계자들을 만나 월 2회 정도 보호자 대상 조각보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바느질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잡념을 떨치기에 좋고, 함께 모여 바느질하며 나누는 대화(수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심리적 해방구가 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화성의 토양에 규방공예의 꽃을 피우고파
화성시 기산동에서 나고 자란 김 명장에게 이번 ‘화성특례시 공예 명장’ 타이틀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녀는 명장이라는 무게감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특히 전통문화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후배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임이라 믿는다.
“제가 꿈꾸는 공간은 1층엔 찻집, 2층엔 전시관, 3층엔 교육실이 있는 규방공예의 거점입니다. 화성시의 투어 프로그램과 연계해 융건릉을 찾는 이들이 이곳에서 조각보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루트가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좋은 마음으로 작품을 해야 그 에너지가 보는 이에게 전달됩니다.” 조각보 한 칸 한 칸마다 정성을 채워 넣는 그녀의 손끝에서, 화성시의 전통문화는 더욱 단단하고 너른 보자기가 되어 세상을 품어가고 있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