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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불가역성과 이해, 그리고 암기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3/05/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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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불가역성이란 논리의 흐름이 한 쪽 방향으로는 적절하나 그 반대 방향으로는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사람이 늙어갈 수 는 있으나 젊어갈 수는 없다.
 
 또 어떤 원인이 있고 그 결과가 있을 수는 있으되 결과가 먼저 생기고 그 원인이 후에 생성될 가능성은 없다. 다만 논리의 전개 방법으로서 결론을 먼저 제시해 놓고 그 원인을 찾아나가는 형식 즉 결론을 순서적으로 앞에 놓고 그 원인을 순서적으로 뒤에 놓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논리의 전개방법과 실제적인 논리의 흐름의 관계를 쉽게 혼동한다. 그래서 논리적 불가역성에 의해 절대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인식하기도 한다.

언젠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면 누구나 영어가 된다,’라는 주장을 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끈 분이 있었다. 그런 주장을 실은 그 분의 책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한을 품고 이 방법에 도전했다. 그리고는 실패했다.

필자는 지금도 종종 같은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져 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면 영어가 될까요? 안 될까요?’ 이 물음에 사람들은 당연히 ‘된다,’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면 영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앞에서 말한 논리의 불가역성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바보라도 늙어갈 줄 아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것은 아무리 천재라도 젊어갈 수는 없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이상한 방법들이 가진 부정적 측면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학습자들이 그 원초적으로 불가능 했던 시도의 결과에 대해 자기 자신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자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면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 근본적인 책임을 자기 자신이 지고 싶어 한다. 이로 인해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런 방법은 사람들이 “내가 인내력이 없어서 해 내지 못했다,”라는 자책으로 인해 오히려 완벽한 방법으로 그 가치를 유지한다.

이와 비슷한 일은 사실 주변에서 늘 일어난다. 다만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그런 일이 상존한다는 느낌조차 가지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실력이 없는 선생님일수록 비효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로 인해 생긴 부정적 결과를 아이들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분위기에 적응한다. 그래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자기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력이 크지 않는다는 패배자로서의 확신을 가진 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

진정한 학습이 호기심에 근거하는 이유는 모두 이 때문이다. 즉 호기심을 통한 관심의 크기가 이해의 폭을 결정하고 또한 그것이 암기가 되는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인식해서 자기의 자녀들이나, 학생들을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진퇴양난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지 말고 이해를 전제로 한 학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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