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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실미도’에 삽입된 항일혁명가 ‘적기가’
신도성 시민기자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6/12/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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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봉돼 1,100만 명이상의 관객을 흥분과 분노로 몰아넣었던 영화 ‘실미도’가 있다. 

 

영화 속에는 소위 북파공작원으로 알려진 684부대원이 집단으로 탈출해 지나가던 버스를 빼앗고 유한양행 앞에서 국군과 대치하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가사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려고 한다.

 

‘적기가’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이 노래를 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롤 중에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의 가사로 시작되는 ‘소나무’의 선율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노래의 원곡은 독일민요 ‘Der Tannenbaum’이며 호라트우스가 작곡했다. 그런데 발 없는 이 곡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짐 코넬이 ‘The Red Flag’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붙여서 사람들 가운데에서 널리 불러지더니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서 ‘赤旗の歌’ 라고 하는 민중혁명가로 번안한 것을 한반도에 들어와서 ‘적기가’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 항일혁명가 가운데에는 ‘적기가’와 같이 외국의 선율을 사용하고 가사만 바꿔서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히 항일 혁명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고 애창되어 지는 동요, 민요에도 일본 또는 외국의 민요나 군가를 차용해서 가사만 우리가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화성신문 2016년 11월30일자 6면 ‘애국가 이야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구한말 우리가 부르던 ‘애국가’도 영국의 W. 쉘드가 작곡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라는 곡에 가사를 붙여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작곡가들이 없어서 기성의 곡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서양식의 국가(國歌)를 만들려고 했지만 작곡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당시 일본에 있던 독일인 프란츠 엑켈트가 조선에 건너와서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해 1902년에 발표했던 것이다. 따라서 서양음악의 작곡을 하기보다는 기존에 알려지거나 널리 불러진 곡들을 차용하여서 가사만을 언치어서 사용했다. 

 

둘째로는 일제강점기에는 이미 한반도에 일본노래나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노래가 많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다. 결정적인 역할은 서양선교사들이 가져온 ‘찬송가’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포교차원에서 가져온 찬송가에는 서양의 유명한 민요나 동요와 같은 선율에 기독교적 가사를 붙인 곡들이 적지 않게 있었으며 이러한 노래들을 교회를 중심으로 자주 부름으로서 친숙한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셋째로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일본의 음악 선율인지 우리민족이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입으로 구전되어 전해진 일본민요와 같은 노래들은 당시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로 혼동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지리적 문화적인 이유로 우리는 일본의 음악을 받아들이기가 다른 어떤 서양음악보다 용이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당시는 일본이 한반도에 식민지 지배자로 점령하고 있었고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실효적인 영향력을 펼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민중에게는 일본의 음악을 포함한 문화는 상위 문화로 인식됐다. 우수한 영재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서양학문과 함께 문화에 쉽게 동화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해방이 됐고 또 남북이 분단돼 7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주 부르는 항일혁명가나 독립군가에 당시 적국인 일본선율의 노래가 적지 않게 남아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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