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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 동포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외국어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7/01/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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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포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36년 동안 일제의 모진 고통을 겪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해방의 기쁨도 잠시 였다.  5년 후 이 땅은 3년여 기간 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한반도는 다시 분단의 아픔 속에 빠졌다. 그 중에서도 저 북녘의 동포들은 일제 치하보다 더 힘든 공산독재치 하에서 살아오고 있다. 해방 후 지금까지 72년의 세월 동안 북녘의 동포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다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인질범들이 인질을 잡고 있다면 구출작전은 어떻게든 전개되어야 하는 법이다. 인질들이 붙잡혀 있는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질질 끈다는 것은 밖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인질구출의 의무와 사명이 있는 인질들의 형제들에게는 분명 무책임한 일이요, 허물이 되는 것이다. 

 

총칼의 힘으로 지배권력을 차지한 자들에 의해 우리의 형제인 북한의 동포들이 인질들처럼 극악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인류역사상 국가형태를 갖춘 집단이 자기 동포들을 이토록 인질처럼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있었는가? 북한 동포들이 목숨 걸고 탈북한다는 뜻을 우리는 너무 무심코 받아들인다. 북한 동포들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외국으로 이민가거나 타국에 귀화할 자유가 있다면 탈북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탈북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북한 주민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뜻임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인류 역사상 어떤 지배세력이 이처럼 자기 주민을 인질처럼 붙잡고 있던 기간이 한 세기 가까이 흐르던 때가 있었는가?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을 구출해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는 남한의 동포들의 행태이다. 남한의 동포들도 자칫했으면 그들과 똑같은 처지가 될 뻔하였다. 6.25 때 공산군의 불법 침략으로 공산화되었다면 저 북녘의 동포들과 똑같은 처지가 될 상황 이었다. 다행히 국군과 자유 우방연합군 수백만이 피 흘리고 전사함으로 공산화를 면하였다. 그 덕분에 남한의 백성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인질들에게 소망을 주는지 인질범들에게 안심 을 주는지 묻지 아니할 수 없다. 무엇 보다 어느 진영의 잘 잘못을 논하기 전에 대한민국이 극심하게 양진영으로 나뉘어져 싸우는 형국은 저 북녘의 우리 형제요 동포인 인질들에게 한없는 실망과 낙담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질범 들의 극악한 죄악이 옳은 일인 것처럼 기를 살려 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남한의 일부 세력들은 인질 범들의 죄악을 미화시키고 고무하고 찬양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일은 우리의 염원인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해 가장 반민족적인 죄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나라가 이런 죄악에 대하여 단죄하는 일을 주저한다면 후손들 앞에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이 땅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과 풍요를 누리는 대한민국은 정치적 입장이나 성향을 뛰어 넘어 고통하며 신음하는 저 북녘의 동포들에게 그 고통에서 벗어날 날이 올 거라는 소망을 주어야 한다. 이 소망을 끊어 버리는 것은 크나 큰 범죄다. 

 

지금까지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절망의 메시지를 준 것은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남한의 동포들은 달라져야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서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역사에 씻지 못할 죄악을 짓지 않기 위해서라도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인질들을 위하고 그들을 구출하는 쪽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적어도 인질범들이 더 이상 그 죄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진압하는 쪽으로도 힘을 모아야 한다. 

 

외국어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 나라의 외국어교육은 영어교육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어교육이 공교육 형태로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 부터이다. 일제교사들의 고압적인 태도로 시작된 영어 교육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었다. 책망과 처벌 위주의 교육으로 진정한 언어의 깊이와 맛을 알아가는 기쁨은 실종된 상태 였다. 더군다 일제교사들의 영어발음은 도저히 영어권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일본어식 발음이었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 중 영어 교육은 시작부터가 엄청난 비효율과 부실을 안게 된 것이었다.

 

언어교육의 첫 번째 목적은 모국어든 외국어든 간에 소통을 위한 것이다. 우리 나라 외국어 교육이 노력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을 위한 외국어공부가 아니었다는데 있었다. 단지 성적을 획득하여 진학이나 입사에서 합격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또는 자격증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시대에 빛을 남긴 위인들은 어려서 부터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주요 언어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부하였다 는 점이다. 위인전을 읽어 보면 시대에 빛을 남긴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 든지 상관없이 당시에 주류가 되는 언어들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을 어렸을 적부터 그 중 적어도 두세 가지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언어 통역기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상용화되는 단계이다. 이런 시대에는 그다지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식의 생각은 언어의 기능을 극히 제한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기계가 도저히 해결해 줄 수 없는 언어의 기능과 역할은 반드시 인격체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 우리의 후손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하여 공헌하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것에 별관심이 없다면 외국어 교육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당대나 자녀 손들 중에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소원이고 그것을 사명으로 인식한다면 언어교육 특히 외국어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혹자는 지능의 힘이 뒷받침 되어야 외국어든 모국어든 공부할 수 있다는 말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또 나이가 많아 외국어 공부할 시기가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 들도 있다. 그러나 언어를 제대로 공부하면 언어 공부는 나의 지능을 키워주고 나를 젊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언어처럼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도 없다. 이런 시스템을 공부 할 때 나의 잠자던 지능도 살아나고 논리력도 살아나고 추리 력도 살아나기 때문에 언어교육을 통해 사람이 젊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가 각박하고 메말랐다면 분명 그 시대는 언어를 진지하게 깊이 있게 배우는 일이 배우 빈곤했던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전 국민이 외국어 한 두 개 정도는 남다르게 배우는 운동이 일어날 때 우리 나라는 정신적으로 매우 풍요한 시대를 누릴 수 있고 인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갈망하여도 아직 인문 분야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연구나 실용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외국어 교육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 세계가 공유하고 통용 하는 주요 언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때 타고난 잠재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또 전세계가 공유하고 통용하는 주요 언어를 교육받을 때 누구든 재능이 엄청나게 개발되는 것이다. 국민 누구나 이런 언어 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외국어 교육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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