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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원으로 철원가기
신도성 시민기자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7/08/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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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아침 6시20분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동두천 역에 갔다. 그리고 동두천역에서 철원군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통근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비는 천원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 용산역에서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대전역까지 여행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러한 열차 내의 분위기와 모처럼 만에 기차여행을 한다는 설레임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마음의 진동을 만들어냈다. 기차여행의 기분에 잠시 젖었는데 벌써 백마고지역에 도착해 기차표를 수거하는 직원대신 수거함에 기차표를 넣은 둥 마는 둥 하고 역사를 빠져나와 안보관광을 위하여 버스승차권과 제2땅굴의 시설이용료 표를 구 입하고 버스에 올랐다.

 

안보관광을 출발하고 처음 도착한 곳은 근대문화유산 22호인 철원 노동당사다. 앙상하게 남은 건물 뼈대가 6.25전쟁의 참혹함과 지난 수십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일정이 바빳던지 관광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두 눈앞에 펼쳐진 노동당사 건물은 북한에 의해서 지어진 건물 중에 유일하게 보존된 것이라는 관광 해설사의 설명이 마음을 진하게 만든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제2땅굴인데 접근이 허락된 곳은 입구부터 약 500m정도이다. 땅굴 발견 당시가 1974년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만일 이러한 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전쟁이 일어났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쟁은 그리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한 여름이었지만 땅굴 안은 온도도 낮았고 북한이 남침을 위하여 파 놓았다는 마음의 긴장 탓에 으스스했다. 간간이 보이는 다이너마이트 구멍을 표시하는 하얀색의 표시와 땅굴 안에 흐르는 실개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모양을 보니 이것이 천연동굴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서 파놓은 인위적 동굴임을 알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백마고지와 휴전선, 그리고 북한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였다. 바로 지척에 보이는 땅들이 북한 땅이고 눈앞에 보이는 산이 백마고지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쳐다보았다. 간간이 보이는 군 초소를 보면서 저곳에서 사는 식물 동물들은 이곳이 전쟁터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알 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보니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을 보면서 왜 우리들은 저렇게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는가? 라는 비애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저곳만 넘어가면 평안남도 순천도 평안북도 철산도 갈 수 있으련만. 6.25전쟁에서 12차례의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을 반복한 백마고지는 폭격으로 고도가 1m이상 낮아지면서 백마가 누워 있는 모양을 형성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백마고지라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분명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관광을 왔는데 이런 현실을 눈앞에서 보면서 알게되니 관광하는 마음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관광지는 월정리 두루미관과 바로 옆의 월정리 역사이었다. 원래부터 철원은 철새들의 보고인데다가 넓은 철원평야에서 곡식들이 많은 덕분에 겨울에 시베리아로 가는 철새들이 반드시 들러가는 경유지이다. 이곳에서 철새들이 배도 든든히 채우고 넉넉히 휴식을 취한 후에 장거리 국제 비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월정리 두루미관은 온갖 철새들이 박제의 모양으로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전시관을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니 흉측하게 녹슬은 쇳덩어리가 보였다. 바로 옆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큰 글자와 함께 서울 00㎞, 평강 00㎞, 성진 00㎞의 거리표시가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역사 바로 옆에 보이는 통일기원 종을 강하게 친 후에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안보관광 출발지인 백마고지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이었다. 

 

프로젝트 이름 ‘천원으로 철원가기’의 사명을 완수하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당면한 남북한 대치의 현실이 실감나게 뇌를 장악 하고 있었다. ‘총성은 멎었어도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제2땅굴 안에서 보았던 문구가 동두천까지 오는 통근열차에서도 독백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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