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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난파=나소운, 사실인가?
신도성 시민기자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7/09/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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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2)

 

음악가 홍난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재다능(多才多能) 이다. 그는 워낙 재능이 많아서 많은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고 뛰어난 능력으로 서양음악도 입되던 시기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홍난파가 워낙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홍난파가 행하지 않은 일이나 확인되지 않은 일이 마치 홍난파가 한 일로 기록되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홍난파가 나소운(羅素雲)이라는 예명으로 당시 신민요나 대중가요를 작곡했다는 주장이다. 처음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은 극작가이며 작사가인 박노홍(朴魯洪)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0년 세광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 가요전집2’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소운, 그의 본명은 홍영후(홍난파)이다. 그는 주옥 같은 예술가곡, 동요곡을 많이 써냈다. 그도 한 때 나소운이란 필명으로 ‘인생은 30부터’, ‘임실은 배’, ‘고원의 황혼’, ‘이역의 길손’, ‘다녀가 주세요’ 등의 노래를 작곡했다. 그가 잠시 대중가요에 손을 댄 이유는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전해들은 일이 있다” 그의 주장은 1차 자료의 발굴이나 확실한 배경설명 없이서 우석(당시 서울대 음대 교수)에 의해서 사실인 것처럼 널리 받아들여졌다. 

 

가곡과 가요가 선명하게 분리된 증거를 명백히 제시해 주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홍난파 자신이었다. ‘조선동요 백곡집’ 등과 많은 가곡을 쓴 홍난파가 1930년대 말 나소운이란 예명으로 ‘인생은 30부터’, ‘임실은 배’, ‘고원의 황혼’, ‘이역의 길손’, ‘다녀가 주세요’ 등의 유행가를 작곡했다. 그가 잠시 대중가요에 손을 댄 이유는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홍난파가 만일 나소운이란 예명이 아닌 홍영후라는 본명이나 홍난파라는 이름으로 유행가를 작곡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이는 현대중가요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우석 교수는 1984년 여름호 ‘예술과 비평’에서 박노홍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는 1986년 4월12일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춘계학술대회에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했다. “홍난파의 ‘조선동요 백곡집’의 첫 페이지에 ‘조선의 아이들에게 바치노라’라는 헌사를 보면 이런 상황에 대한 홍난파의 심정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홍난파가 노래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해 유행가 작곡에 적극적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에 홍난파는 몇 곡의 유행가를 나소운이라는 예명으로 작곡했으며 그 작곡 이유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란 변명으로 대신한 것은 동요와 가곡을 작곡한 그가 당시의 유행가의 윤리성을 긍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학자 가운데서는 ‘홍난파는 나소운이다’ 라는 주장은 더 이상의 검증이나 확인도 없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필자는 새로운 각도에서 이러한 면을 접근했다. 바로 홍난파의 제자인 나운영의 자료집에는 어떻게 기록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운영이 소유하였던 홍난파 자필악보에서 나소운이란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신민요 망향곡(望鄕曲)이 나소운 작곡 을파소 작사로 기록됐다. 또 한양추색(漢陽 秋色) 첫 장에는 나소운 작곡, 홍난파 편곡으로 기록돼 있다. 악보에 그려진 서체는 홍난파의 것으로 보이나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보인 홍난파이기에 기록만을 가지고 ‘나소운이 홍난파이다’이라고 하거나 ‘나소운은 홍난파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그러기에 홍난파의 자료2 악보편을 해제한 홍정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도 1999년 ‘음악과 민족’ 18호에서 “홍난파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껄끄러운 부분에서도 나소운(羅素雲)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곡을 밝혔다. 그러기에 이름을 쓰는 난에 다른 이름이 있는 것은 홍난파의 곡으로 보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홍난파를 나소운과 동일한 인물로 보는 것에 신중하자는 홍정수의 주장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매사를 정면승부한 홍난파의 성격상 나소운이란 다른 이름으로 신민요나 대중가요를 발표할 분이 아니라 는 것이다. 아울러 작곡한 사람의 이름과 관련된 사항은 아무리 신중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홍난파가 다른 필명으로 글을 쓴 경우는 어쩌다 있었지만 본인의 곡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할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실을 접근하는 방법에서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온정주의이다. 같은 의미로서 ‘좋은 게 좋은 것이다’가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다’ 고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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