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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10] 결과가 좋으면 공정한가?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원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8/03/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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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원장     ©화성신문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대부분의 중동지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 왕국은 인류문명의 한 축을 이룬 제국으로 평가된다. 그런 대제국도 이란 북서쪽 고원의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되었다. 이제국을 이룬 왕은 기원전 550경 활약한 ‘키루스(Cyrus)’라는 대왕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크세노톤은 키루스왕의 치적에 반하여 자신들의 적국 왕임에도 불구하고 키루스에 대한 전기를 발간한다. 그가 쓴 ‘키루스의 교육 (Cyropaedia)’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최초이자 최고’의 리더십 저술이라고 격찬한 책이다. 

 

그 책에 키로스의 어릴 적 에피소드 하나가 나온다.

 

“어떤 몸집이 큰 소년이 작은 튜닉(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코트)을 입고 있었는데 몸집이 작은 소년이 큰 튜닉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죠. 그래서 그의 튜닉을 빼앗아 자기가 입고 자기의 튜닉을 그에게 입혔습니다. 그래서 저(키루스)는 그 사건을 재판할 때 두 사람 모두 자기에게 맞는 튜닉을 입게 되었으므로 모두에게 좋다고 판결했습니다.”

 

선생님은 키루스에게 학생들끼리 일어난 일에 대해 재판을 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키로스의 위와 같은 판결에 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키로스에게 잘 했다고 하기는 커녕 잘못했다고 매질까지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몸집 큰 아이가 강제적으로 몸집 작은 아이의 웃을 빼앗은 것은 결과를 떠나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선생님은 키로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세상은 공정해야 하고 또 좀 딱딱한 표현을 쓰면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 운 것인가? 물론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를 ‘분배적 공정성’이라고 한다. 사회에 빈부격차가 심하면 안되고, 또 누구는 더운밥 먹는데 누구는 찬밥 먹으면 안된다. 똑같이 8시간 일했는데 누구는 10만원 받고 누구는 8만원 받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은 몸집 큰 아이의 행동은 공정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정성의 또 다른 면이 있다. 과정이 또는 절차가 바람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절차적 공정성’이라고 한다. 일을 잘해 보겠다고 조직에서는 절차와 기준을 만들어둔다. 그 절차와 기준 대로 일을 하면 대체로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가령 회사에서 구매 입찰을 하는데 지난 주 금요일까지 신청 마감일이었다. 그런데 사장이 아는 어느 업체가 공고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하면서 추가로 입찰 참여 기회를 달라고 한다. 이 업체는 실력이 있는 업체로서 회사에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업체다. 결과를 생각하면 아쉽지만 절차를 지킨다면 입찰 기회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절차적인 공정성이다.

 

분배적 공정성과 절차적 공정성이 서로 충돌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절차적 공정성이 우선 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민주사회이고, 법치주의이고 또 열린사회인 것이다. 분배적 공정성을 강조하다보면 장기적으로 절차적 공정성이 크게 훼손되기 쉽지만, 절차적 공정성을 잘 지키다 보면 장기적으로 분배적 공정성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차적으로’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차와 기준을 미리 세우고 거기에 따른다는 것인데 그 절차와 기준이 항상 명시적으로 법이나 문서로 정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바람직한 절차가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미래와 행복을 생각해서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그들의 배우자를 골라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사람하고 결혼해라”고 명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자녀들은 반발한다. 그들에게 있어 “이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부모들도 따지고 든다.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다 너를 위해 그런 것이다.”고 항변한다. 이것은 어떤 법이나 어떤 명시적인 룰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문제이고 심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기원전 55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키루스는 분배적 공정성보다 절차적 공정성이 우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대제국을 건설하는 리더십인 것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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