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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신도성 시민기자 기사입력 :  2018/11/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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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성 시민기자     ©화성신문

지난 4일 일요일 아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려 동탄을 방문했다. 2015년 개봉된 ‘위플래쉬’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A Star is born’이 지난달 9일 개봉되었지만 기대만큼의 흥행을 일으키진 못한 듯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중대한 원인의 하나가 주인공 레이디 가가에 대해 비호감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영화가 개봉된 22일 후인 지난달 31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상황이 달라도 매우 달랐다. 개봉에 맞춰 언론과 SNS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고 ‘A Star is born’ 영화에 실망해 관람하지 못한 음악인들이 마음을 달래줄 새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영화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영화는 한마디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처음부터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국적 정체성을 건드리고 있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출신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문제 삼고 있다. 비주류 소수(아웃사이더)가 감당하는 운명적인 난제를 영화는 끝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머큐리의 성(性) 정체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매니저와 동성애를 하며, 한때 동거했던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는 등 성(Gender)의 한계를 넘나들어서 발생하는 정체성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를 감독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마침내 ‘음악의 정체성’도 건드렸다. 록음악을 하는 대중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서사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주인공인 머큐리는 록그룹 퀸(Queen)에서 보컬 리더였으나 단원간의 갈등으로 갈라서 홀로 남고 병도 얻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그가 현실을 잊으려고 음악에 전념하는 열정을 그리고 있다.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돕기 위한 자선 공연에 참여를 앞둔 그룹 퀸의 보컬 머큐리는 언론사 기자회견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대스타는 겸손함과 미덕으로 기자의 질문에 진솔하게 답변해야 함을 잊고, 언론과 지나치게 대립 날을 세우면서 불성실한 답변을 이어갔다. 영화에서 특히 그의 명성에 맞지 않는 자세를 부각시킨 장면이 이 부분이다. 이는 주인공의 ‘인간성 정체성’이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일상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장면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결정해, 연기자야(I will decide who I am, a Performer)"라고 동료에게 강하게 말하지만, 그는 본인 몸에 에이즈 균이 자라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공연에 7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서 떼창을 부르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에~~요” “에에~요” 머큐리의 선창에 따라서 떼창하는 모습은 음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영화를 보았던 관객들은 마치 본인들이 록그룹 퀸의 음악회장에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영화 상영 중에 옆자리 관객들의 따라 부르는 노래 소리가 진동으로 귀에 자극을 주었다. 리듬에 맞춰 조금씩 몸을 흔드는 관객의 모습도 보였다. 머큐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많고 그의 노래가 우리의 귀에, 그리고 몸에 익숙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머큐리가 양성애자라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그는 에이즈에 감염되어 생을 마감하였기에 영화는 우리사회에 동성애자(양성애자)에 대한 문제를 던져주었다. 기성세대의 반감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들은 퀴어(Queer) 축제를 열고 자신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우리사회에서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고 본다.


상상해 보라.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가정의 일이라면 수용할 수 있겠나? 내 아들이 성장해서 결혼한다면서 배우자로 남자를 데리고 인사하러 집에 온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 반대로 내 딸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겠다는데 사위될 사람이 딸과 동성인 여자라면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 영화에는 없지만 “성은 성답게 소중하게 간직될 때에 성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 본 기고는 본지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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