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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화박사의 심리칼럼] ‘엄마 보고 싶어요’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8/12/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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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남편이 시댁에 들른 후 밤늦은 시간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술 냄새가 진동하고 옷에는 여기저기 지저분한 것들이 묻어있다. 남편이 실망스럽고 그다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집안에 사람이 있는데 모른 체 할 수가 없어 방문을 열고 남편에게 냉수라도 가져다줄까 물어보았다. 

 

남편은 피식 웃으며 나를 노려본다. 잠시 후 남편은 라면이 먹고 싶다며 내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한다. 기가 차고 화가 났지만 늦은 시간 시끄러운 소리가 날까 봐 알았다고 하고 라면을 끓여주었다. 남편은 라면을 먹으면서 나를 앞에 앉아보라고 한다. 나는 얼른 자고 싶고 더 이상 남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잔소리가 길어질까 봐 남편이 원하는대로 맞은편에 앉았다. 

 

남편은 며칠 전 시어머니가 김장하러 오라고 했는데 왜 가지 않았냐며 내게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 나는 그때 출산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 가지 못한 것 잘 알지 않느냐고 했다. 남편은 그래도 시어머니가 오라고 하면 가야지 임신했다고 김장을 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순간 남편이 나를 하찮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남편에게 보여줄 만큼 내 눈물이 하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 아이를 출산하기 위하여 병원으로 갔다. 거의 하루를 진통하여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제왕절개를 하였다. 마취에서 깨어날 무렵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를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흐느적흐느적 울기도 하고 엄마를 연신 부르며 몽롱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였다. 내가 엄마를 부르며 울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는 마취에서 깨어난 후 엄마를 부르는 내 자신을 기억하면서 놀랐다. 평생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갓난아이 때 아빠와 이혼한 후 나와 헤어졌다. 결혼할 때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내 기억에서 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토록 굳건히 엄마를 내 마음에서 지웠는데 내가 비몽사몽 간에 부르는 이름이 엄마였다니 내 스스로 가슴이 아리고 슬프다. 맑은 정신으로 엄마를 부를 수 없다면 마취기운을 빌려서라도 엄마라고 한번이라도 불러봤으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쓴웃음이 나기도 하고 심장이 터질 듯 아프기도 하다.

 

결혼 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참으로 많이 방황하고 있다. 어쩌면 나를 버린 엄마라도 나는 엄마를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나보다. 내 자신이 참으로 안쓰럽다. 그래 이제라도 가슴이 터지도록 ‘엄마 보고 싶어요’ 소리 내어 부르자. 지금 내 품에는 갓 태어난 내 아기가 내 아픈 가슴에 손을 얹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다.

 

(www.maumb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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