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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 경진상사
최고품질 필름으로 화성 농업발전 뒷받침
 
신호연 객원기자 기사입력 :  2019/01/0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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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진상사의 전영혜 대표     © 화성신문

장학금 기부 등 사회환원에도 앞장

 

1954년경부터 비닐필름이 농업에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하우스·터널 등이 눈부시게 보급됐다. 특히 비닐하우스는 급속도로 발전해 현재 가장 중요한 원예시설로 전국에서 이용되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채소류의 재배에 가장 많이 쓰이며 화훼·과수류의 재배에도 이용되고 있다.

 

국내 비닐하우스용 필름 업계의 절대 강자로 자리하고 있는 학표필름의 100여 개 대리점 중, 유일하게 여성 혼자서 사업을 시작하고 경영하면서 뛰어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경진상사의 전영혜 대표(66세)를 찾았다.

 

경진상사는 28년째 학표필름의 화성, 오산, 수원, 평택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대리점이다. 한때 지역 점유율 90%를 기록할 정도로 농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학표필름에서는 1981년 농업용 장수필름, 보온 필름 개발, 2001년 곤포용 사일리지 랩필름 ‘소머기’ 필름 최초 국산화, 2010년 토양 속에서 약 300일이면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전 분해되는 생분해성 멀칭필름 ‘바트로’ 필름 개발, 2013년 코팅형 PO필름 솔 라이트 필름 개발 등 국내 필름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전영혜 대표는 고향이 서울이고 농사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전업주부였다. 38세때 아주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함께 공부하던 농협 간부가 마침 농협에서도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사업을 하려 하니, 비닐하우스용 필름을 공급해주면 좋겠다고 강권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남편이 삼성전자에 포장재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던터라 일신화학공업의 학표필름이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수원 지역의 대리점 자리가 생겨 학표 필름과 인연을 맺고 수원 영동 시장에서 대리점을 시작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남편이, 평생 농사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고, 사업의 경험도 없었던 전영혜 대표에게 “3년만 지탱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정도로 우려의 눈길이 많았다. 특히 거칠고 중량이 무거운 필름 사업의 경우 학표 필름 전체 대리점 중에서도 여성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처음이었다. 기왕 스스로 결심해 시작한 일이니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각오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영업 활동을 했다. ‘사업은 농민이 씨앗뿌려서 뿌린대로 거두는 것과 똑같아,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고 조금 뿌리면 조금 수확한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뛰었다.

 

필름 사업의 핵심은 고객인 농가에서 경작하려는 작물과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적절한 필름을 선택하는 것이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필름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1년 농사가 좌우되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중요성을 알기에 본사 전문가들을 달달 볶다시피 연락을 주고받으며 고객에게 가장 적절한 제품을 추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런 노력으로 추천해준 필름을 사용해본 고객이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다른 고객들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별도의 광고없이 고객이 늘어갔다. 

 

14년 전, 농민들과 좀더 가까운 위치에 있겠다는 생각으로 화성시 팔탄면의 현 위치로 대리점을 이전했다. 이른 새벽이나 밤 늦게라도 애타게 제품을 찾는 농민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수원에 있던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다른 산업과 달리 농민들은 별도로 쉬는 날이 없다. 대리점이 쉬는 주말에 “당장 일을 해야 하는데 자재가 없으니 빨리 창고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라도 가져가 겠다”고 난리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햇볕에 그을린 농민들과 어우러지기 위해 아예 화장하는 것을 포기한 지도 오래고, 바쁠 때는 직접 지게차로 하차하는 여장부가 됐다. 

 

농업용 필름으로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10년 전 어느 날, 한 고객이 아예 비닐하우스 시공까지 알아서 해 달라고 강제로 떠맡겼다. 비닐하우스 시공 도면도 볼 줄 모르고, 사용되는 부품 이름, 규격, 수량, 가격도 모르는 초짜에게 일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왕 떠맡은 일이니 어설프게 할 수는 없었다. 비닐하우스에 사용되는 부품들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회사 전문가에게 보내 물어보며 배우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매일 밤 12시, 1시까지 독학했다.  새로운 도전에 부담감도 있었으나 그동안 잠들어 있던 열정이 샘솟아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을 해 나갔다. 이렇게 한 채, 두 채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전영혜 대표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들을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쌓고 있다. 태풍이 와서 왠만한 비닐하우스는 다 망가졌음에도, 전 대표가 시공한 비닐 하우스는 멀쩡하게 버텨내 고객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을 때는 뿌 듯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에 농촌을 보면 농사짓는 분들의 고령화가 심화되어, 예전에는 동네 어르신들끼리 품앗이하던 비닐하우스 필름 교체 작업도 외부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이러한 일들을 하려고 하지 않아, 거의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팀을 만들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농사에 꼭 필요한 기술들이 사라져 앞으로는 이런 기술을 보유한 외국인 밑에서 일해야 할 것이 우려된다고 한다.

 

사업을 통해 번 돈을 보람있는 곳에 기부하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농민들과의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일부라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8년 전부터 어려운 농가의 학생들을 위해 매년 200만 원씩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이외에도 청소년 보호회를 통해 장애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아주대 경영 대학원 장학재단을 통한 장학금도 정기적으로 기부해오고 있다.

 

 ‘정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경진상사가 지역 농민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신호연 객원기자(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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