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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수수께끼 그림 김홍도 풍속화 - ③ 활쏘기
불편한 진실, 단원풍속도첩 풍속화는 김홍도가 그리지 않았다
 
주찬범 향토작가 기사입력 :  2019/04/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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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일명 김홍도 필풍속도 화첩)에 수록된 풍속화 25점은 국민그림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김홍도가 직접 그린 작품인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어 지금껏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실제 전문적인 안목이 없더라도 찬찬이 관찰하면 의문점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매주 화성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상식의 눈으로 <<단원풍속도첩>> 풍속화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를 풀며 정조와 김홍도가 살았던 시대를 여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활쏘기>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그림1. <<단원풍속도첩>> 중 <활쏘기> 부분 확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 <<단원풍속도첩>> 중 <활쏘기> 부분 확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트릭. 계획된 신체묘사의 오류 및 비일상적인 상황 설정

 

① 활시위를 당기는 사내는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라도 활을 쏘려면 오른발이 앞에 있어야함에도 왼발이 앞에 있다. 손과 발동작의 모순적 설정이다.

 

② 활을 잡은 오른손에 장갑을 끼었다. 정조 시대에는 장갑이 없었다.(그림 1)

 

③ 자세를 교정해주는 군관의 오른손을 왼손처럼 그렸다.(그림 1)

 

④ 바위에 앉아 화살이 곧은지 점검하는 사내는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 가늠한다.(그림 2) 익살이 넘치는 함정이고, 절묘한 트릭이다.

 

 

▲그림3. <<단원속화첩>> 중 <투전도>, 개인 소장     © 화성신문

▲ 그림4. <투전도>, 성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성신문

 

■잡설. <활쏘기>는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가 아니다.

 

장갑을 끼고 활을 잡는 설정은, ‘손목시계를 찬 김홍도’처럼 시간적 모순이 발생한다. 개항 이후 전래된 장갑을 김홍도(1745~1806년 사망 추정)가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2018년 7월 9일, “미술 시장 일각에서 김홍도가 20대 때 그린 작품이라고 추정하는 풍속화 7점”이 담긴 <<단원속화첩>> 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앙일보, 2018년7월11일 

 

그 중, <투전도>(그림 3)에는 1900년 경 이후부터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양초’가 그려져 있다. 역시 김홍도가 그릴 수 없었던 물건 이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위작 사고는, 수출화를 제작하는 화가들이 조선의 풍속(민속)이 그려진 자료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김홍도 풍속화를 모사하거나 모방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 개항 이후 전래된 장갑이나 양초를 그려 넣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활쏘기>는 김홍도가 직접 그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풍속화 25점 모두 김홍도의 진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단원풍속화첩>>에 수록된 <투전도> (그림 3)는 19세기 후반 활동한 성협(생몰년 미상)이 그린 <투전도>(그림 4)와 똑같은 도상이다.

 

김홍도가 그리지 않은 풍속화에 ‘단원’의 명칭을 버젓이 붙이고, 또 그 위작을 모사한 작품이 유통되었던 것이 개항 이후 조선 미술시장의 실정이었다. 이렇듯 <<단원풍속도첩>>에는 불편한 진실이 곳곳에 숨어있다.

 

주찬범 향토작가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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