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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규암 태안119안전센터장, “34년 소방관 외길 인생, 저에겐 천직이죠”
‘대충’ 싫어하는 성격, “소중한 생명과 재산 다루니 꼼꼼해야죠”
가장 듣기 좋았던 말, “이런 상사와 같이 오래 근무하고 싶어요”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19/09/0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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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암 태안119안전센터장이 소방관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보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화성신문

 

 

“우리 몸에 기생하는 벌레 중에 꼭 버려야 할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규암 태안119안전센터장이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글쎄요…?”

 

이규암 안전센터장은 벌레 이름을 ‘대충’이라고 말했다. 일을 정성껏 하지 않고 대충한다고 할 때 쓰는 그 대충이다. 이 센터장은 ‘디테일’에 목숨을 건다. 대충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일이기에 대충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이규암 센터장 이름 앞에 ‘꼼꼼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이유다. “너무 꼼꼼해서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개의치 않아요. 소방일이 촌각을 다투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기에 꼼꼼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 센터장은 소방관을 천직으로 여긴다. 국민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뱉는 말 속에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음이 묻어난다. “소방일이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즐거운 일, 의미 있는 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직업 없어요. 소방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규암 센터장은 1986년 1월 25일 소방관이 됐다. 9월 현재 소방관이 된지 34년 7개월째다. 현재 직급은 지방소방경. 올 12월로 정년퇴임한다. 1983년 2월 1일자로 면사무소 기능직으로 공직에 발을 들인 후 3년 만에 분야를 바꾼 것이다.

 

“처음에 소방관이 된 후 2년 정도 정말 힘들었어요. 선배들이 군대처럼 빳다도 치고 조인트도 까고 그랬거든요. 그때는 내가 왜 소방관이 됐을까 후회를 많이 했지요. 그런데 2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내가 정말 잘 들어왔다. 이런 직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랑 궁합이 잘 맞는 거지요. 하하.”

 

2019년 9월 4일 현재 화재출동 7860회, 인명구조 344명. 숫자가 말해주는 이 센터장의 구조활동 내역이다. 2011년 최우수안전센터 선정, 2011년 자랑스러운 공무원 선정, 2013년 소방방재청장 표창, 2014년 화성소방서 장비개발 최우수 선정, 2014년 국무총리 모범공무원 표창 등 화려한 수상 실적도 있다.

 

▲ "소방관 보면 더 따뜻하게 격려해주세요"라며 국민을 향해 하트를 보내는 이규암 태안119안전센터장.     © 화성신문

 

소방관이 된 후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소방관이 된지 15년 쯤 후인 2000년도에 있었던 출동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화재현장에서 인명구조를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거예요. 메고 온 봄베(산소통)에 산소가 다 떨어진 겁니다. 농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마지막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호흡을 멈춘 채 관창(몰 쏘는 호수) 줄을 잡고 탈출했었지요. 위험한 순간이었어요. 연기를 두 번만 들이쉬면 뇌에 손상이 오거든요. 충분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네요.”

 

이 센터장은 두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집중해 있으면 두렵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엄청난 불길 속으로 들어가서 과연 내가 살아나올 수 있을까. 인명을 구하지도 못하고 나도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센터장에게 구해준 사람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호흡과 맥박이 다 중지된 사람이 있었어요. 호흡 맥박이 중지되면 사람이 죽었다 그러지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현장에서 심폐소생술로 살렸을 때가 기억나네요. 당시 24세 여성이었어요. 5년 전 일이네요. 지금은 결혼해서 애 낳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가끔 연락이 왔어요. 지금은 안 오지만. 산모 탯줄을 끊은 적도 있네요.”

 

이 센터장이 기억하는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언제일까.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사망자를 데리고 나올 때가 있어요. 며칠 동안 생각이 나요.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그렇고. 심적으로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입니다.”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해서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10년 전까지 교회를 다니다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차에도 집에도 성경책을 두고 늘 기도한다고 한다.

 

직원 25명을 둔 이규암 센터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신용과 성실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남에게 신용 잃을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들어본 적이 없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일을 미루거나 떠넘기는 걸 싫어합니다. 남의 말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도요. 자식들에게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 하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센터장의 마음이 전해져서였을까. 직원들은 “이런 상사하고 더 오래 근무하고 싶다”고 말한다. 센터장 퇴직 후에도 인간관계를 계속 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직원들이 많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이 센터장은 30분 남짓한 인터뷰 시간동안 행복이라는 단어를 스무 번은 썼다. 한 마디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사랑, 행복, 믿음. 이 세 가지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 세 단어가 마음에 새긴 가훈이라고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근원은 가정입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모든 게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밥 잘 차려주는 것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요. 화성에서 가평소방서로 출퇴근할 때도 아내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밥 차려줬어요.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지요. 직장생활도 가정처럼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34년의 세월동안 소방 외길을 걸어온 이 센터장. 그는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 자질로 소통과 설득력을 꼽았다. 그동안 근무지가 일곱 번 바뀌었다. “마지막 근무지가 고향인 태안이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동료 소방관들에게는 “소방관을 천직으로 알고 맡은 임무에 충실히 해주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국민들에게는 “소방관을 조금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은퇴 후에는 농사를 지을 계획이란다.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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