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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문학관 품사는 관계대명사, 관계 맺어주는 연골 역할 해야”
노작문학상 등 각종 상 휩쓴 실력파, 변화 갈망하는 ‘시의 농부’
“노작 홍사용은 ‘왕의 눈물’, 나는 눈물 왕릉 지키는 능참봉”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0/01/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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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작 홍사용 사진 앞에 선 손택수 관장.     © 화성신문

 

 

역시나 시인다웠다. 사용하는 단어는 절제됐고, 그 절제된 단어들의 번지듯 이어지는 연결은 그 자체로 향연이었다.

 

개관 10주년(2020318)을 앞둔 122일 노작홍사용문학관 손택수 관장을 만났다. 20187월 관장으로 위촉된 손 관장과의 대화는 관계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뿌리와 꽃, 눈물, 죽음, 자아, 존재, 여백 등으로 화선지에 먹물 스며들듯 번져나갔다.

 

문학관은 품사에 비유하면 관계대명사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가치가 흐릿하지만 무엇인가와 무엇인가의 관계를 맺게 만드는 연골 역할을 할 때는 빛이 납니다. 노작문학관은 시민과 시청 사이에서, 그리고 지역주민과 전문 문인들 사이에서 다양한 관계망들을 형성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1970년생인 손 관장은 실력파다. 임화문학예술상, 한국시인협회상 젊은 시인상, 신동엽창작상, 이수문학상 수상자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의 시집과 청소년 시집 <나의 첫 소년>,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 등을 펴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노작문학관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 노작홍사용문학관 이용자들이 지은 자작시들이 자작나무에 매달려 있다.     © 화성신문

 

 

내가 화성에 있는 건 미지에 대한 매혹 때문

 

노작문학상이라는 게 있어요. 홍사용 선생을 기리고자 지난 2001년부터 매년 그 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활동을 펼친 시인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제가 노작문학상 13회 수상자예요. 관장 제안이 왔는데 몇 번을 고사했어요. 수상자로서 노작 선생과의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곤혹스러움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문학이란 게 미지에 대한 공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제가 화성에 있는 건 미지에 대한 매혹 때문입니다. 이제 임기의 절반이 지났으니 남은 임기 동안 미지의 매혹에 더 흠뻑 빠지려고 합니다.”

 

손 관장은 노작문학관의 존재 이유를 관계를 이어주는 것에서 찾았다. 손 관장의 그 연골 역할, 오작교 역할을 위한 노력은 1년 반의 시간동안 어떤 결실을 맺었을까.

 

노작문학관은 전국 문학관 중에서 가장 성공한 지역문학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관을 방문하는 문인들은 일개 지역 문학관이 어떻게 국립극단 감독이 심사를 하는 전국연극제며, ‘시와 희곡같은 잡지 간행, 그리고 한국출판진흥원에서도 하지 못하는 출판학교를 하느냐며 놀랍니다. 작년에는 출판학교를 통해 배출된 상상바다’, ‘백조같은 전국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단행본 출판사가 우리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창작강의를 들은 시민들이 시인과 소설가로 정식 등단을 하기도 했고요.”

 

노작홍사용문학관은 강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전국 문학관 중에서 유일하게 소극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식 등록한 도서관이 있어서 문학 전문 도서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자랑거리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노작(露雀, 이슬 노, 참새 작)을 호로 쓰는 홍사용(1900~1947)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10318일 개관됐다. 홍사용은 낭만주의적 경향을 표방한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시를 주도했던 시인이자 극단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운동에 참여했던 예술인이다. 생존 시에는 작품집이 나오지 않았고,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간행했다. 유해는 유년시절을 보낸 화성시 노작로 노작홍사용문학관 뒤 노작공원에 안장돼 있다.

 

 

▲ 손택수 관장이 노작 홍사용이 이끌었던 토월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화성신문

 

 

시는 상처가 꽃이 되는 법 가르쳐

 

손 관장은 원래 농부가 되고 싶었는데 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여한 의미가 시의 농부.

 

원래는 농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를 씁니다. ()이라는 게 본디 노래()와 별()이 결합된 꿈의 업종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노래와 별이 분리되고 말았죠. 시인은 분리된 노래와 별을 다시 이어주고 싶은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시는 상처가 꽃이 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나는 펜촉을 삽으로 삼아 대지를 갈아엎고 쟁기질하는 시의 농부입니다.”

 

손 관장은 노작 홍사용을 멘토 겸 스승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노작의 눈물 왕릉을 지키는 능참봉이라고 표현했다. 노작이 눈물의 왕이니까.

 

문학은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늘 죽음을 명상하는 장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적 묘지기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노작 선생에 대한 고마움이 큽니다. 노작의 문학과 삶을 공부하고 기리는 일이 어떻게 살 것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샘솟게 하고 있습니다. 화성에서 참스승을 만난 느낌입니다. 중국 은나라 시조인 탕왕이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반명(盤銘, 세숫대)에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는 훈계의 글을 새겨놓았다고 하는데 노작이 그 길을 제시해준 셈입니다.”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손 관장은 관장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병행해야 하는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술가는 고독을 숙명으로 지닌 채 창작에 집중해야 합니다. 문학관 관장은 문화기획과 행정을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이 전혀 다른 두 가지 면을 함께 살아낸다는 게 여간 벅찬 게 아닙니다. 대척점처럼 보이는 이 양극을 지구의 극지처럼 품고 있다고나 할까요. 나의 행성은 기우뚱한 그 양극을 축으로 하여 돌아가는 별입니다.”

 

노작문학관의 슬로건은 일상을 문화로, 문화를 일상으로!’. 손 관장은 이 슬로건이 지향하는 노작문학관의 역할을 퇴적층 쌓기라고 규정한다. 일상의 문화들이 켜켜이 쌓여 퇴적층을 이룬다는 의미다. 올해는 노작문학관 개관 10주년을 맞는 해다. 2년 후에는 노작 선생이 창간한 문예지 백조가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손 관장은 지금 그 퇴적층을 토대로 화성을 문학수도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 2년 후면 노작 선생이 창간한 문예지 ‘백조’가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백조의 부활을 꿈꾸는 손 관장.     © 화성신문

 

 

화성, 예술도시 되고 문학수도 될 것

 

노작 홍사용을 기리던 노작문학관은 이제 노작이 창간한 백조파 동인들의 문학과 예술이 한 자리에 모이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박종화 같은 문인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노래를 작사한 분이 바로 백조의 안석영 선생입니다. 화성은 노작이 선물처럼 안겨준 백조라는 콘텐츠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조 없이 한국근대문학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릇은 변죽을 울려야 복판이 운다는 말처럼 백조를 울리면 노작 홍사용이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노작문학관에 백조의 자료를 전시하고, 광장에서 백조파를 기리는 공공미술품들을 볼 수 있다면, 화성이 전국민이 찾는 예술도시가 되고 문학수도가 될 것입니다.”

 

손 관장은 개방적이다. 닫힘 보다는 열림을 좋아한다. 문학관을 문학을 애호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청소년들도 가까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솔직히 전문 창작 프로그램보다 교양 프로그램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가령, 출판학교나 인문교양학교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시간대도 직장인들 퇴근에 맞춰 오전에서 오후로 변경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시민들을 문학관으로 이끌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존 프로그램에 익숙한 분들에겐 뜨악했을 수도 있겠지요. 전문 문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에겐 문학관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곳을 매개로 보다 넓은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창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언제든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문학과 예술의 본질은 정신을 고양시키고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 분야에 오래 천착해온 손 관장이 느끼는 보람도 남다르지 않을까.

 

예술상거래는 참여자를 더 넓은 자아로 이끕니다. 선물이 갖는 선순환과 마찬가지예요. 창조 정신은 자아 안에서 움직입니다. 예술적 영감은 한 개인이 아닌 존재와 자연, 집단과 인종, 역사와 전통, 정신세계에서 솟아나는 거예요. 창조 정신을 작품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고귀한 일입니다. 예술가들이 현실에서 구현해낸 작품은 우리에겐 선물입니다. 이 선물로 인해 우리는 개인이나 각 세대가 사라질지라도 소멸하지 않을 삶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노작문학관이 하나의 선물로서 시민들과 함께 할 때가 이즈음의 보람입니다.”

 

리더는 배경 같은 존재돼야

 

손 관장이 추구하는 리더십은 배경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리더가 배경이 되어야만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노작 홍사용이 스스로 배경 같은 존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시인 정지용이나 박팔양 같은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수많은 당대 예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아낌없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저작 한 권 남기지 않았지요. 리더는 이기는 존재가 아니라 노을처럼 져서 물들일 줄 아는 존재입니다. 신동엽의 시 산문시1’석양 대통령이라는 직종이 나옵니다. 석양은 싸워서 이기지 않고 짐으로써 세계를 물들입니다.”

 

손 관장의 취미는 걷기다. 그에게 걷는 것은 틈을 갖는 것이고, 자기 안에 여백을 만드는 행위다. 여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손 관장에게 기존 문인들과 문인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것, 감성적인 것을 분할하는 권력질서의 작동을 깨뜨리는데 문학의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문학장 내외에서 이런 권력질서가 작동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역문학의 폄하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 문인들이 문학장 내의 위계질서를 성찰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런 실천 중의 하나가 지역의 문학예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일 것입니다. 마침 작년에 경기 남부에서는 유일하게 화성작가회의가 출범했으니 이런 작업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문인 지망생들에게는 용기와 절제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문학적 글쓰기는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통을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죠. 또한 자신의 에너지를 하나의 소실점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의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미니멀 라이프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다 갖고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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