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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울린 조용필 콘서트
 
홍인기 기자 기사입력 :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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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콘서트’는 왜 ‘조용필’ 인지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공연은 궁평항을 가득 메운 3만여 명의 관객들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화성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무대에 오른 조용필의 첫마디는 “송산면 쌍정리 99번지 조용필입니다.”였다. 시민들은 열정적인 환호로 화답했다.

이어 그는 “고향에서 수차례 공연을 추진했으나 그동안 마땅히 공연할 장소가 없어서 콘서트를 개최하지 못했다. 고향에서 콘서트를 열게 돼 감개가 무량하고 화성시민 여러분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며 고향에서의 첫 콘서트 소감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궁평항을 찾은 모든 관객들에게 자신의 애틋한 마음만큼이나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별이 된 화성의 아들 조용필

송산면 쌍정리 출생 송산초 졸업
15세에 떠나 43년 만에 고향공연

대한민국 국민가수 조용필은 지난 1950년 3월 21일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염전을 운영하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송산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어린 시절 정든 추억이 묻어 있는 고향을 뒤로 하고 송산중 2학년 때 서울 경동중학교에 전학하게 된다.

이후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엷 히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대마초파동으로 가수활동을 중단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80년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와 함께 ‘단발머리’, ‘정’ 등의 곡을 동시 히트시키며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자리 잡았다.

‘국민가수’ 조용필에게도 고향은 하나뿐이다. 한 지인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숨 돌림 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는 틈나는 대로 마을에 있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을 주민 행사에도 참가할 만큼 그가 고향을 바라보는 시선은 특별해 보인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 그는 화성시민을 위해 공식일정에도 없었던 이번 콘서트를 마련했다.

화성출신 국민가수 조용필을 향한 화성시의 구애도 적극적이다. 시는 이번 콘서트 유치를 위해 지난해부터 조용필 소속사와 끊임없이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화성과 조용필의 관계가 마냥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시가 지난 2005년부터 추진 중인 조용필 생가복원사업은 ‘특정인물 우상화’라며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시는 생가 부지를 매입해 놓고도 아직까지 활용방안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올해 창원시 홍보대사에 위촉되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시민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콘서트 공연으로 조용필의 화성사랑이 확인됐다. 조용필을 향한 화성시민들의 애정 역시 뜨거웠다.

 공연에서 관객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호는 화성에 길이 남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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