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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192]
리더가 인기 없는 결정을 해야 할 때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2/01/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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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1965년 8월9일,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는 눈물을 훔치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연방체제를 구축하여 살 길을 모색하려 하였으나 이게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란 말레이시아 반도 끝에 붙어 있는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는 1819년부터 영국이 개발한 항구였으며 그때부터 영국 땅으로 경영되고 있었다. 

 

그러다 1942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점령되었으나 일본의 패전 후 싱가포르는 다시 영국식민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싱가포르 주민들의 의식이 성장하여 독립을 갈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구 180만밖에 안되고, 면적도 740㎢로 서울시(605㎢)보다 조금 넓은 이 나라를 독립 국가로 꾸려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와 연방 체제를 구축하여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얻고자 하였지만, 말레이시아 측의 반대로 말레이시아 연방 체제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이제 싱가포르는 독립 공화국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언어부터 문제가 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했었다. 그러나 독립 국가가 된 이 마당에 굳이 식민 시대의 언어를 공용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우세했다. 더구나 싱가포르 국민의 75%는 중국 이민자들이었고, 이들은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었다. 14%는 말레이계, 8%는 인도계였다. 중국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계 상인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었다.

 

리콴유는 자신도 중국계이지만 다수라고 중국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일 중국어를 공용어로 한다면, 비중국계 25%를 포용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두고두고 민족 갈등의 씨앗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중국계의 요구를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제3의 언어를 찾아야 했다. 

 

자존심이 좀 상하는 일이지만, 식민 시대의 언어인 영어를 공용화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라 생각되었다. 영어를 공용화하면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살 길은 무역과 관광인데 이는 중국어 보다 영어를 해야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콴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중 언어 정책’이었다. 영어를 공용화 하되 영어가 아닌 언어를 하나 더 하게 하는 것이었다. 중국어를 쓰는 중국계는 중국어와 영어를 하겠지만, 영어만 쓰는 사람들도 중국어나 말레이어를 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 영어 초등학교 학생들의 중국어 시험 합격률은 1969년 20%에서 1974년 58.9%로 늘어나고, 중국어 초등학교 학생들의 영어 시험 합격률은 1969년 10%에서 1973년 59.8%로 높아졌다. 리콴유는 이런 정책적 실험을 자신의 책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리콴유가 전하는 이중 언어 교육 이야기’, 행복에너지, 2020).

 

리더는 다수가 원한다고 다수결로 밀어붙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소수가 떼를 쓰거나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그들의 요구에 굴복해서도 안 된다. 더러는, 아니 많은 경우 다수의 반대나 소수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인기 없는’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기 없는 결정이 결코 독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기 없는 결정과 독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당성의 유무이다.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위의 높은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공익을 위해, 미래를 위해 지금의 아픔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전제되면 리더는 찬반을 부르짖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가치를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독단은 이와 반대되는 경우다. 대의명분이 없고 개인의 사욕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다. 리더 자신의 인기몰이나 리더의 측근과 친인척이 먼저 이득을 보는 그런 결정은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해악이다.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은 리더는 무서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이유가 폭력을 써서가 아니라 바른 결정을 하기 때문이란다. 

 

리더가 자신의 사리를 챙기지 않고, 바른 결정을 하면 그거야말로 무서울 수밖에 없다. 그 반대 경우는 리더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민심이 떠나고 있는데 말이다. 

 

비록 당장 자신에게 불편하고,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리더가 고뇌 끝에 내린 정당한 의사 결정을 결국 사람들이 승복할 수밖에 없다.

 

리콴유 총리는 공용어를 결정할 때, 다수와 소수를 모두 배려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나라의 장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리더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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