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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 오십의 나이로 산다는 것
 
이해덕 편집인 기사입력 :  2009/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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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孔子) 말하기를,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논어 위정편(論語 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지천명’이란 나이 오십을 가리키는 말로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다. 곧 마흔까지는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쉰이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유교의 반역자’ 또는 ‘양명학 좌파’ 등으로 불리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 1527~1602)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쑥스럽게 웃을 수밖에…”

  이 얼마나 가슴 후련한 자기 성찰이요, 고백인가. 그는 어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오십을 넘어서야 ‘난쟁이가 사람들 틈에서 연극을 구경하면서 (보이지도 않으면서)덩달아 박수를 치는 장단일 뿐’이라며 입만 열면 공맹(孔孟) 운운하는 부류의 위선을 꼬집는다.

  공맹(孔孟)의 도 이외에는 다른 학문을 인정하지 않던 당시 사상계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탁오 이지.
 “하늘과 사람을 속이는 자는 반드시 도학을 따진다. 도학이 그 속임수 계략을 팔아먹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가 도학자를 향해 행실은 개, 돼지나 다를 바 없다고 공격한 까닭에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만 부지기수였다.

  사상의 자유를 추구했던 그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독서나 견문으로 물들지 않은 어린이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그대로 보존해야 하고 인간의 욕망은 가식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탁오 스스로도 자기 생각이 당대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과격한 주장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기 저서에 ‘불태워 버려야 할 책’이란 뜻의 ‘분서(焚書)’ 혹은 ‘감춰야 할 책’의 ‘장서(藏書)’로 이름을 붙였으니.

  “내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나를 알아주는 자가 없다.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지 않는 자를 위해 죽음으로써 분노를 토하리라.” 그 말대로 탁오는 76세 때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자 옥중에서 자살했다. 세상과 맞서 싸운 이단자다운 최후였다.

  공자의 지천명과 그의 사상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탁오 이지의 오십 나이. 부연하자면 공자는 나이 마흔에 철이 들어 쉰 살이 돼서야 세상 이치를 알았고. 탁오 또한 오십을 넘겨서 자기만의 사상을 완성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이 오십 이전을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탁오의 고백은 사뭇 직정(直情)적이며 비장하기까지 하다.
 나이 오십은 이처럼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인생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분수령과도 같다. 이를테면 속이 꽉 찬,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알아가는 나이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화성시청 홈페이지가 틀리지 않다면 최영근 시장은 1959년생으로 올해 만 오십의 나이, 즉 ‘지천명’에 해당한다.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하는 나이에 접어든 최 시장에게 거는 화성시민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겠다. ‘지구보다 큰 생각’을 하는 ‘길이 열리는 화성’의 수장으로서 최 시장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나이 오십을 맞았을까. 만에 하나 ‘지구보다…’,‘길이 열리는…’이라는 표현이 단지 현란한 수사(修辭 rhetoric)에 지나지 않는다면 시민들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우를 범할 뿐이다. 그가 내세우고 약속한대로 지구보다 크고, 길이 열리는 화성을 건설하려면 먼저 시장으로서 관용의 미덕을 갖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자세로 시정에 임해야 한다. 인구 오십만 명에 육박하는 화성시의 수장으로서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최 시장이 부디 지천명에 역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하는데 이롭다(忠言逆耳 利於行)’고 했다. 이 또한 공자님 말씀이다. 귀에 거슬리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과연 지천명의 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자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명심해야할 구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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