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조영호 리더쉽인사이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161]
꿈을 이루어가는 여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5/10 [08:5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 엄청난 기근까지 덮쳤다. 1974년,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 채로 신음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죽어갔다. 젖꼭지를 물리고 있던 엄마도 소리 없이 숨을 거두었고, 아이는 울 힘도 없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나라를 살리겠다는 꿈을 안고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는 이런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이들의 처참한 삶에 해답을 줄 수 없다면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유누스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대학 근처 마을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이 세 아이의 엄마인 21살의 여자였다. 그는 생계를 위해 대나무로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대나무 재료를 중간상한테 사서 그 중간상한테 완성품 의자를 팔았다. 그러고서 번 돈이 미국돈 2센트에 불과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한 대가였다. 자신이 돈이 있어 직접 재료를 사다 직접 시장에 팔면 이문이 더 나오겠지만 그 돈이 없었다. 돈을 빌려볼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는 고리대금업자만이 독수리처럼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다. 그들에게는 은행대출을 위한 담보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글을 몰라 복잡한 대출서류를 읽고 사인할 수도 없었다.

 

우선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사람부터 돕자고 마음먹고, 학생을 시켜 조사를 하였더니 마을에서 42명이 관련되어 있었고, 미화로 27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고작 27달러 때문에 42 가구가 고통을 받고 있다니...”유누스 교수는 깜짝 놀랐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큰  돈이 아니었다. 그는 개인 돈으로 27달러를 42명에게 빌려주고 형편 닿는 대로 원금만 갚으라고 했다.

 

유누스 교수는 이 문제를 조금 제도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는 학교 앞에 있는 한 국립은행 지점을 설득했다. 유누스 교수가 개인적으로 보증을 서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을 대출해 줄 수 있게 했다. 이것만으로 큰 진전이었다. 그러던 차에 방글라데시 농업은행인 크리시 은행 총재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실험적으로 은행지점을 하나 설립하여 유누스 교수가 운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1977년 ‘그라민(마을이라는 뜻) 은행’ 이라는 실험은행이 탄생되게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크리시 은행의 지점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특수한 소액대출 은행이었다. 유누스 교수는 학생들을 직원으로 고용하여 그가 구상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을 운영했다.

 

그라민 은행은 일반 은행과는 모든 것이 반대였다. 담보도 요구하지 않았고 대출서류도 없앴다.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조금씩 갚아나가게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게 대출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여자들이 외부활동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명의로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라민 은행은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자신이 현장을 조사해보니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다. 남자들에게 돈이 가면 가족보다는 개인적으로 돈을 쓴 경향이 있는데 여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 관습과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라민 은행 직원들을 사무실에 앉아있게 하지 않고 마을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도록 했다.

 

그리고 또 여자들이 5명 1조를 만들어 오고 이들이 교육을 받아 모두 시험에 합격해야 대출을 시작하도록 했다. 서로 경쟁하고 돕고, 격려하도록 한 것이다. 그라민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끝나는 그런 은행이 아니었다. 그 돈으로 일거리를 찾아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그러려면 창의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5명의 소집단은 그런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 좋았다. 8개 조를 묶어 좀 더 큰 규모의 센터도 운영을 했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자극을 받는 장을 만든 것이다.

 

유누스 교수가 살고 있는 치타공 지역에서 성공한 이 실험적 은행은 내전으로 피폐된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급기야는 1983년 정부의 허가를 받아 독립적인 은행이 되고 유누스 교수는 그라민 은행의 총재가 되었다. 여전히 97%의 주주회원이 여성이며 대출금 상환율이 99%에 이르는 그라민 은행은 그렇게 한 개인의 꿈과 집념으로 탄생하고 발전해왔다.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누스 총재는 한 리더가 어떻게 꿈을 추구해 가야 하는지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

 

choyho@ajo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