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발안 고주리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고 김흥열 선생 일가 6위가 사건 발생 105년 만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셔지면서 현 세계를 살고 있는 후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김흥열 선생은 향남면 발안지역에서 안상용, 안지순, 안봉순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해 1000여명의 시위대와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일제는 4.15. 제암리 학살 만행을 저지른 이후 김주업의 결혼식을 위해 모였던 김흥열 등 일가족 6명을 칼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날 옮겨진 일가 6위는 김흥열 지사와 동생 김성열, 김세열, 조카 김흥복, 김주남, 김주업 지사로 모두 천도교인이다. 이 같은 참혹한 사건 후에도 김흥열 선생 일가의 불행은 계속됐다.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 3품 통정대부를 지낸 김흥열 선생의 아버지와 김주업 지사의 새 신부까지 죽으면서 멸문의 위기까지 처했다. 이러한 불행을 겪은 일가를 위해 고주리 주민들은 불태워진 김흥열 일가 6위의 유해를 수습해 현재 위치한 팔탄면 공설묘지에 안장하고 유족, 천도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매년 4월 15일 추모제를 거행하며 희생을 기려 왔다. 정부도 김흥열 선생을 고주리 순국선열 6위에 기록하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다만 유족 간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국립묘지 이장이 늦춰지다 지난 3월 유족대표와 협의를 통해 이번 국립묘지 이장이 최종 결정됐다. 이날 봉송식에는 고주리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스코필드(F. W. Schofield) 박사기념사업회가 함께하기도 했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도 “고주리 여섯 선열을 늦었지만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어 뜻깊고 다행스럽다. 고주리 순국선열들이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에서 영면에 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라고 했다.
이번에 고주리 순국선열의 영현이 국방부 의장대의 예우 속에 국립대전현충원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된 것은 화성시로서도 의미가 있다.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이 문을 열고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3.1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독립운동 메카로 도약하기 위한 시점에서의 일이기 때문이다.
화성시는 추모제 개최와 함께 화성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보훈정책 확산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고 밝히고 있다. 또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통해 다양한 독립운동 관련 사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항일정신 계승에도 앞장선다는 각오다.
이날 봉송식은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희생은 빛으로 오사 모두의 꽃으로 피었네’를 주제로 진행됐다. 또 조국을 위했던 그 숭고한 정신은 후세에 전달된다는 의미를 담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을 수 있겠소’라는 곡이 불렸다. 선조의 정신에 부끄러움이 없이 ‘모두의 꽃’이 되기 위한 후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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