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비담 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 사무국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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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깨면 날마다 폭염경보가 핸드폰에 수신된다. 한여름 최대 전력 수요치가 연일 경신되고 일부 지역에선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지난 7월 21일 이후 지속되는 열대야는 2018년의 기록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맹렬한 폭염이 앞으로 열흘간 더 지속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다. 낮엔 엄청난 폭염, 밤엔 엄청난 폭우의 기후. 불안정하고 이상한 징후가 틀림없다. 기후환경 위기라고 한다. 기후 위기가 가져온 ‘폭염이라는 재난’이라고 한다.
온열질환 재해노동자 통계가 올해도 심상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에스앤에스행정’ 시대의 핸드폰에는 가능하면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능하면’이라는 조건에 속한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에게 이 폭염경보 안전 안내 문자는 분명 불공평하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기후환경은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재역 못미쳐 뱅뱅사거리 택배 오토바이 한 대/ 구멍 뚫린 태양광선의 폭염과 부딪혔다/ 찌잉 하고 오토바이가 비틀거리고/ 헬멧이 금속성 빛으로 부서지며 고꾸라졌다/ 빛부신 은빛의 실명 속으로/ 바퀴살이 회오리친다/ 스포크 사이로 녹아나온 숨겨운 꿈이/ 눅진해진 아스팔트에 빨려들고 있다/ 한 달만 더 벌면/ 양재동 시민의 숲 앞에 점 찍어둔 음악 스튜디오를 빌릴 수 있었던 꿈이/ 검은 폐유의 아스팔트에 투명한 소실점을 만들고 있었다/ 훈김의 짠 바닷물에 흐느적거리다가/ 암청의 심해로 사라지는 해파리 같이// 기괴한 여름의 횡단보도 흰 표시선에 나동그라진 핸드폰에서/ 영혼 없는 알림음이 드르륵 운다/ 전국대부분폭염경보 체감온도35도이상 가능하면야외활동자제하고실내에있기 충분히물마시기 그늘에서휴식 양산착용등건강관리에유의하세요-행정안전부
-전비담 시 「폭염경보 안전안내문자의 소실점」
지난 7월 25일 정부는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협의를 통해 ‘폭염 대비 노동자 긴급 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안전보건공단·민간전문기관과의 협업으로 8월 말까지 6만여 개소의 건설 현장 등 사업장에 열사병 예방수칙(물, 그늘, 휴식) 및 무더위 시간(14~17시) 작업 중지 등이 잘 지켜지는지 집중 지도·점검한다고 한다. 옥외작업의 특성을 가진 건설 현장뿐 아니라 고온의 실내 환경에서 작업하는 물류센터·조선소·제철소 등도 점검 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며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건설 현장의 경우에는 공사 기간을 연장하겠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책은 임금 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실효성이 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다. 경기도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토목·건축 분야 공사에서 코로나19 확산과 폭염·호우 같은 이유로 공사가 중단돼 당초 약속한 시간만큼 근무하지 못하면 해당 일의 잔여 시간 임금을 경기도가 보전하는 방식을 채택한 경기도의 재난 수당 지급계획은 그러한 차원에서 참고할만한 긍정적인 사례다. ‘물, 그늘, 휴식’이라는 열사병 3대 예방수칙이 다양한 일터의 조건을 고려하여 구체화된 모양으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상이변이 통상의 현상이 돼 버린 상황에서 폭염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의 현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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