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교육학 박사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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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어머니와 어린 자녀의 대화에서 훈훈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엄마, 겨울인데 이 물(지하수)은 따뜻해, 땅 밑에서 데워주나 봐?"
"왜 그렇게 생각했어?“
"여름에는 물이 시원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따뜻해."
이 말에 어머니는 과학적으로 설명할까 망설였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아이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그러게~ 땅속에 착한 요정이 있나 봐. 그래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워주나 봐. 땅속 요정이 고맙네."
아이는 행복한 듯 미소지었다.
이 대화에서 나는 아이의 비상한 관찰력에 놀랐고, 어머니의 지혜로운 반응에 놀랐다.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어머니는 그 배움에 재미있게 동조하며, 지지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대화에는 신뢰와 신념의 자녀 양육 방법이 담겨 있다. 어머니는 어린 자녀의 자발적 학습 능력을 신뢰하였다. 그래서 날씨에 따른 물의 온도 지각차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동시에 어려운 용어로 설명해 본들 어린 자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신뢰와 신념이 일치되어 어머니는 어린 자녀와 이렇게 멋진 대화를 한 것이다.
엘리스(Ellis)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환경적 자극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도 인간의 모든 행동은 신뢰보다 신념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자녀 양육에서도 부모의 양육 신념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신념뿐 아니라 신뢰도 행동 유발요인으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앳킨슨(Atkinson)에 의하면 행동은 욕구와 기대에서 나온다. 기대는 달성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위험도 내포한다. 이러한 기대는 신념보다 신뢰와 더 연결된다.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은 ‘신뢰 이동’이란 책에서 신뢰는 위험을 남매처럼 동반하여,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의 틈새로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이라고 했다. 신념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자신의 생각에 따른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의 의견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신뢰는 상대방의 생각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상대방의 생각에 따른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사피어(Sapier)에 의하면 의사소통은 기술적 측면도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신뢰는 바로 상호존중의 바람직한 의사소통을 하도록 해 주는 원천적 힘이며 나아가 상대방이 스스로 자아실현을 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힘이다. 보츠먼이 “신뢰는 결과를 보장하는 계약 같다"고 한 말과, 상대방이 믿어주면 그 기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행동유발에 있어 신뢰의 효과성을 잘 말해준다. 이러한 신뢰의 중요성을 보츠먼은 “삶에서 먼저 무기를 버리고 그 다음에는 음식을 버려라. 그러나 신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사람은 신뢰 없이 살 수 없다”는 말로 강조했다.
이제 자녀 양육에서 부모는 자신의 신념을 내부에 보관하고 자녀에 대한 신뢰를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는 여전히 미성숙자이기에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모는 쉽게 자신의 신념에 따르고 자녀에 대한 신뢰는 버리고 있다.
신뢰는 기대와 위험을 함께 동반하는 개념이기에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위험을 모험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부모들도 자녀 양육에서 자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강압적이 되기보다 자녀를 신뢰하는 모험을 즐기면 어떨까? 자녀를 신뢰하는 부모의 모험은 자녀의 자발적 행동을 촉진하고 나아가 부모가 그렇게 원하는 자녀의 자기주도적 학습력이라는 보물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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