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시인 / 메밀꽃 천서리 막국수 대표/시민로스쿨화성지원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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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의 바통
몇 십 바퀴의 트랙을
전력을 다해 돌은 것 같은데
내 손엔 그 흔한, 건네받은 바통 하나
들려져 있지 않다
빈손을 이어받으며 여기까지 달렸거나
바람이나 햇살 같은 무형을 쥐고
달렸다는 뜻이겠지
제각각 바통을 든 사람들과
트랙을 한참 돌다 보면
그들은 하나씩 둘씩 바람처럼 나를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은 이런저런 바통을 건네다
그 바통 떨어뜨려서 실격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제 것 아닌 것 받으려 했거나
너무 꽉 쥐려고 했을 것이다
바통을 놓치면 넘겨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둘 다 실격이다
그러니 어쩌면 빈손을 넘겨주고
그 빈손을 받고 또 열심히 뛰고
그런 일이 훨씬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받은 것 없으니 놓칠 일도 없다
속 편한 사람보다는
손이 편한 사람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손은 비어 있으니
아무나 와서 잡아도 괜찮다
올해도 벌써 아홉 바퀴를 돌았다. 가끔 남들이 쥐고 있는 바통을 탐낸 적도 있다.
내게 들려줄 바통이 아니라면 그냥 빈손인 채로 달리다 보면 놓칠 일 없으니 편하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도 빈손으로 달리고 있으니 손이 편안하단다. 속 편한 것도 좋지만 손이 편한 사람들끼리 달리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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