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시지부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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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다 하도록 목련이 피어도/물기 오르지 않는 수척한 봄이다/ 삶인지 죽음인지 남인지 북인지/ 어디로 간지 알고도 모르는/ 행불자의 신원을 묻기 위해/ 이 땅의 마을에는 목련의 가로등이 핀다// 골목골목 삽작걸마다 목련등을 켜고/ 행불자의 안전한 귀가를 기다린다
문경 유곡을 거쳐 동로면 어딘지/ 끌려간 형의 이름은 행불자/ 대를 이어 영원한 행불자// 행불의 역사와 함께// 영원한 행불의 형제// 해방공간 좌익활동 경력을 보호관리한다고/ 우리나라 형을/ 우리나라 군경이 끌고 가서/ 돌려보내질 않았다// 도망쳤네도망치다잡혀갔네월북했네납북됐네/ 뜬구름 잡는 말들만 돌림병처럼/ 허리 칭칭 감은 철조망을 돌아/ 돌아왔다// 산 자와 죽은 자/ 어느 명단에도 없었다/ 남에도 없고 북에도 없었다/ 파르라니 머리 깎고 산사로 간 행불자의 아내는/ 속세의 행불자가 되었다// 초롱하게 빛나는 목련 꽃봉오리 같은 세 살 다섯 살백이/ 형의 두 아들까지 떠안은 아우// 뼈로도 돌아오지 못한 형은/ 아우의 무릎뼈에서/ 평생을 시린 바람처럼 울고 있었다// 넘어야 할 삶의 허리마다/ 레드컴플렉스 철조망에 찔려서/ 꿇리는 무릎관절// 뼈가 운다/ 가정해체범 국가폭력의 만행/ 기막히다기막히다 낯색까지 막혀/ 얼골을 잃어버린 굴욕의 표정으로/ 뼈마디가 철퍼덕철퍼덕 운다// 남과 북/ 서로의 이름이 올라 있는 형제의 살생부에/ 군데군데 멍들어 떨어지는/ 흰 주먹울음// 목련이 우둑우둑/ 모가지뼈 꺾이고서야 져버릴 이데올로기인가 보다/ 이제는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겠구나/ 쉬쉬 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죽어 묻히고서야 속절없는 아우가/ 기어이 곪아 터지는/ 관절의 말무덤을 연다
-전비담 시 ‘관절염’ 전문
*얼골: 얼굴. 얼이 모인 골짜기. 얼은 곧 정신
하필이면 기획연재 ‘시로쓰는민간인학살’을 탈고한 아침 댓바람에,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1950년대 이후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라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점 등을 근거로 들며, 한반도는 1950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고 불안정해 보인다는 미국의 한 씽크탱크센터 연구원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였다.
‘시로쓰는민간인학살’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후대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그 비극의 역사를 시로써 기록해 두고자 기획해, 전국의 시인들이 자신의 고향이나 거주지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시로 기록하며 3년 가까이 이어온 대장정의 연재물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가자에서도 자고 깨면 세계 곳곳이 연일 전쟁 소식이고, 힘없는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 수십 수만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남한 육해공에서는 연일 한미연합 전투훈련이고 북한에서도 남한의 전쟁 연습과 전쟁 위기 조장을 구실 삼아 미사일을 쏘아올리며 육로를 차단한다, 비무장지대를 요새화한다, 협박하고 있다.
파주·문산·연천 등 휴전선 접경지역에서는 밤마다 대남대북 방송 초대형 스피커가 서로를 비난하며 웅웅거리는 귀신울음 소리를 내고 있다. 남북 상공에서는 이미 대북 전단지 풍선과 대남 쓰레기 풍선의 전쟁이 발발한 지 한참 되었다. 핸드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을 부양 중에 있음’이라는 문자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민족공동체를 상대로 끊임없이 전쟁 쇼를 하는 남북 권력자들로 인해 기분이 더러워지고 뭔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한다. 국민의 74년 묵은 참담한 비극의 트라우마를 들쑤시고 이용해 먹는 남북의 권력체제, 대체 뭐 하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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