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락천 (주)동부케어 대표이사/온맘터치협동조합 이사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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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공경해야 한다.’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당연히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노인이 너무 흔해서인 까닭에서다. 세상의 천지만상 가운데 흔하면서도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겠는가. 거기에 비싼 값이 매겨지는 것은 그만큼 그 숫자가 적기 때문일 터이다.
거꾸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지금에는 오히려 아이들이 공경받는 대상이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고 돌보는 데 부모에다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어른 여섯 명이 달라붙는다. 이런 시대이고 보면 그들은 얼마나 귀하디 귀한 존재인지 모른다. 주위에서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고 추켜세우니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아 자기밖에 모른다. 버릇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일 터이다. 자연히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날 리 만무하다.
결국 어른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고 보니 아이들을 탓할 수 만도 없다. 그러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지난날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을 펼친 맬서스의 인구론이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졌었다. 그의 주장은 불과 두 세기 만에 이제는 한물간 이론이 되고 말았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면서 산아제한을 부르짖던 표어도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너나 나나 다들 아이 낳기를 꺼리다 보니,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인구를 늘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출산 장려를 위한 지원책으로 자그마치 수 백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면서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반대 상황으로 뒤바뀐 세상을 보면서 격세지감이 든다. 아이들은 가물에 못물 줄듯 줄어드는데, 어른들은 장마철에 강물 붇듯 불어난다. 하루가 다르게 생겼다 하면 실버타운 아니면 요양원이고, 없어졌다 하면 어린이집 아니면 유치원이다. 기업체에서는 아기들 기저귀며 분유 생산시설은 계속 줄여나가는 대신 어른들 기저귀며 영양식 생산 시설은 그만큼 늘려간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재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풍경 너머, 공원에는 무료를 달래는 노인들로 넘친다. 자연 노인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귀하면 대접받고 흔하면 괄시당하게 마련인 세상사의 엄숙한 이치는 어느 누구라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단순 논리로 따지면야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쨌든지 오래오래 생을 누리다 떠나는 것이 지상 최대의 축복일 수 있으리라.
마르고 닳도록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 존재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저출산 추세가 이어지는 한, 장수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점점 재앙으로 이행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이 예전처럼 공경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영영 물건너간 것인가. 나날이 떨어져 가는 출산율 추이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흐름이 자못 걱정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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