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Analyst)라는 직업이 있다. 애널리스트가 실제로 펀드를 관리하거나 투자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펀드매니저와 일반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떤 산업은 뜨고 어떤 산업은 질 것인가 등 예측을 한다. 구체적으로 투자할 만한 종목을 추천하기도 한다. 일반기업에도 애널리스트가 있을 수 있지만 증권회사에서는 애널리스트가 필수적이다.
애널리스트의 성과는 보고서다. 그래서 좋은 보고서를 내는 사람이 좋은 애널리스트인 것이다. 주요 경제 언론사에서는 1년에 두 번씩 애널리스트를 평가하는데,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900명 정도 되는 펀드매니저가 참여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큰 조사다. 증권회사에서는 이런 평가를 근거로 자사의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보수를 결정하고 또 계약 연장도 하고 있다.
필자의 제자 중에 증권회사에서 오랫동안 애널리스트로 일한 K 씨가 있다. 그는 25년이나 대형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 최근에 투자자문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널리스트로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평가를 꾸준히 받았다는 이야기다. 평가에서 항상 5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애널리스트는 말 그대로 분석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 정보를 다루고 숫자와 싸운다. 그래서 분석력과 판단력이 좋아야 하고 수리적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경영, 경제 전공자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도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K 씨가 애널리스트로 장수한 이유는 그의 수리 능력이 아니었다.
K 씨는 기업 분석을 할 때 현장을 많이 나간다. 현장에 나가 분위기를 살핀다. 복도에 그림이 똑바로 걸려 있는지, 벽에 걸린 시계가 제시간을 가르키고 있는지, 그리고 화장실은 깨끗하고 아늑한지, 직원들이 일하는 표정은 어떤지 등을 직접 보는 것이다. 그는 경험을 통해 이런 ‘분위기’가 회사의 빌딩이나 재무 보고서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잠시 떴다가 사라지는 기업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 기업들은 기술력도 있었고, 전략도 좋았고, 전망도 좋았다. 그래서 투자자들의 환심을 얻었다. 문제는 성실하고 알뜰하게 일하는 자세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는 조직의 문화이고, 인성이다. 기업의 생존은 바로 인성이 결정하는 것이다.
벽에 그림이 좀 삐뚤게 걸려 있으면 어떤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얼마든지 잠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다니는 복도에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림이 삐뚤어져 있으면 누군가 바로 잡아야 한다. 신속하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되어 있다면 여러 군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회사에서는 보고서에 오류가 많을 가능성이 있고, 제품에 하자가 있을 수 있다. 화장실이 깨끗하게 청결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있거나 아예 화장실이 후진 곳에 있다면, 그 회사는 겉만 반지르르하지, 속이 문제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직원에 대한 배려심이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K 씨만 찾은 사실이 아니다. 우수기업 연구가 톰 피터스와 짐 콜린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수기업을 찾아서(In Search of Excellence, 1982)’의 공저자인 피터스는 커피잔 받침에 커피 자국이 있거나 잔을 건네는데 손잡이가 손님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방향이 아니면 그 회사와는 거래를 하지 말라 했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에 있었던 짐 콜린스 교수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2001)’에서 위대한 기업에는 ‘규율의 문화’가 있다고 했다.
규율은 질서가 잡혀 있고, 바르게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규율이 단지 환경의 청결과 질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의 질서가 더욱 중요하다.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규율이다. 규율의 반대는 방만함이다. 공사 구분이 없고, 네 일 내 일이 없고,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으며, 맺고 끊는 게 없는 게 방만함이다. 이런 회사는 돈이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게 나가고, 누가 무엇을 하는지 책임이 없다. 이런 것을 막아주는 것이 규율이다. 규율이 바로잡혀 있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서 나갈 수 있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창의적인 성과를 내고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규율이라는 것이 사규나 거창한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규율은 외부인에게 감추기도 어렵다. 그런데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소홀히 넘어가는 것이 또한 규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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