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화성문인협회 사무국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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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정호승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포옹』 (2007 창비)
언젠가 전신거울이 걸려 있던 큰 대못을 뺀 일이 있었다. 무심코 대못 뺀 깊숙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알있다. 못도 제 집이 있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견딘 녹슨 못의 집이 있었다는 것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벽을 붙잡고 점점 굽어졌을 제 몸을 끝까지 버틴 짧은 수직의 안간힘이 있었다.
못은 제 집을 빠져나가면서 벽 속의 어떤 기억은 물론이고 인색한 가족의 저녁까지 한순간 송두리째 빠져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낡을수록 더 깊고 푸르러지는 대나무 순처럼 한없이 연한 잎들이 생겨나던 그리운 시간들은 허물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펴지지 않는 구부러진 못을 보면서 시인은 아버지를 기억한다. 못은 녹이 슬어 녹물이 벽 속에 가득 고여 내벽을 타고 흘렀듯이 세상의 높고 두터운 벽을 빠져나온 후 더 이상 펴지지 않는 몸으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진 아버지를 마주한다.
가족이라는 커다란 집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 단단한 못으로 박혀 있었던 아버지의 굽어진 허리와 어깨와 등을 만졌을 것이다. 피곤하고 무거운 짐 같은 몸으로 돌아간 저녁에 무심코 때 절은 외투를 걸어 두었던 안방의 큰 대못이 어쩜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인은 녹슬고 구부러진 못을 버리지 않고 애써 헝겊으로 닦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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