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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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 ©화성신문 |
최근 산업현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화재 사고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개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그 찰나의 실수나 특정 개인의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곤 한다. 그러나 사고의 내면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는 어느 한 사람의 실수로 갑자기 돌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조직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형성된 결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의 사고는 겉보기에 항상 ‘예외적인 돌발 사건’처럼 비치지만, 실제로는 반복되어 온 작은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임계점을 넘긴 결과다. 이와 관련해 고전적으로 인용되는 것이 바로 ‘하인리히 법칙’이다.
큰 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수십 건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건의 이상 징후가 존재한다는 이 법칙은 사고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은 위험 신호들이 묵살되고, 사소한 결함들이 방치될 때 사고는 수면 아래에서 서서히 준비된다. 결국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된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해 드러나는 현상인 셈이다.
또한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이론이 있다. 조직 내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여러 겹의 안전장치가 스위스 치즈의 단면처럼 배치되어 있다. 각 장치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구멍(결함)들이 존재하는데, 평소에는 이 구멍들이 서로 엇갈려 있어 사고를 막아내지만, 어느 순간 이 구멍들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면 모든 방어막이 무너지고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잠재적 위험들이 시간이 흐르며 조직 내에서 점차 ‘정상’적인 상태로 수용된다는 점에 있다.
처음에는 예외적이었던 부적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지고, 결국에는 누구도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 사회학적으로 ‘정상화된 일탈(Normalization of Deviance)’이라 부른다.
보호장비를 잠시 미착용하는 것, 복잡한 절차를 임의로 간소화하는 것, 안전 규정을 일부 생략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탈이 쌓이면서 조직은 위험에 극도로 둔감해진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 익숙함이 가장 치명적인 위험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나 단순 실수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사고는 그 조직이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규정은 명목상 존재할 뿐 준수되지 않고, 위험은 인지되지만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때 사고는 필연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결국 안전의 문제는 지엽적인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더 나아가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조직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첨단 시스템과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감지 센서, 자동화 설비, 고성능 모니터링 시스템 등 기술적 방패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안전은 물리적인 시스템만으로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도, 그것을 운용하는 현장의 문화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기술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 인간의 태도와 조직의 철학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안전은 ‘문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위험을 대하는 태도, 원칙을 고수하는 습관, 그리고 아주 작은 이상 징후도 기꺼이 드러내는 조직적 분위기가 한 조직의 안전 수준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가 무엇을 핵심 가치로 삼고, 어떤 행동을 용인하며, 무엇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체질이 형성되는 것이다.
리더의 진정한 역할은 사고가 터진 뒤에 사후약방문 격으로 책임을 묻는 데 있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 조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잠재적 위험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그것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 사소한 문제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는 엄격함, 번거롭더라도 원칙을 사수하는 정직함, 그리고 안전을 매몰 비용이 아닌 최우선의 ‘기본 가치’로 확립하는 것이 리더의 막중한 책임이다. 리더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안전 원칙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결연한 의지를 보일 때, 비로소 조직 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안전관리의 수준은 곧 조직의 격(格)이며, 그 조직을 견인하는 리더의 수준을 투영한다. 사고는 한 개인의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조직이 공들여(?) 만든 구조적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현장의 실무자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조직의 운영 시스템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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