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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이인숙 ㈜상전정공 대표
책임감·자신감 무장한 '열정의 화신', “어려운 문제 해결할 때 희열 느껴”
사업 안목 가진 남편 덕분에 경영자의 길, “1순위는 늘 회사죠”
2020년 현대자동차 ‘신기술 개발상’ 수상, “현대 사랑해요”
“코로나 언텍트 시대, 모든 게 물류로 통하니 우리는 더 바빠요”
향후 10년 먹거리는 ‘플랫폼’, “한국은 넓고 할 일은 많답니다”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1/04/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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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숙 ㈜상전정공 대표가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화성신문


  

, 오늘 인터뷰 제대로 되겠는데.’

 

이인숙 대표를 첫 대면한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받은 느낌이다. 그만큼 첫 인상이 강렬했다.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말도 빠르고 행동도, 판단도 빨랐다. 이 대표 눈에 띈 문제점은 즉시해결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즉시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불호령 시스템이 정착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상전정공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는 화물 차량 바디 위에 탑재하는 ’(네모난 박스)을 제조하는 회사다. 현대자동차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9년도에 현대자동차로부터 신기술 개발상을 수상했고, 2020년도에는 신기술 개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61년생인 이 대표가 경영자가 된 것은 순전히 남편 덕분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일 긍정의 힘으로 행복한 성공 신화를 써 나가고 있다.

 

좀 무식하게 경영을 했죠. 경영을 전공했다거나 직장생활을 통해 사업을 배운 게 아녜요. 애들 아빠가 공무원이었거든요. 교통안전진흥공단 검사원으로 있었어요. 30년 전에는 검사원 도장 없으면 다 불합격이었던 시절이니까 파워가 있었죠. 남편한테 사업할 마음이 있었나 봐요. 시대의 흐름을 읽은 거죠. 자동차와 관련 있고, 물류 분야가 전망이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인연을 맺게 된 게 자동차 특장입니다. 남편이 탑차가 전망 있다는 걸 예측한 거예요. 자기 분야니까. 우여곡절 끝에 1995년도에 평택 안중에 1300평 땅을 산 게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였어요.”

 

 

▲ ‘탑’이 장착된 완성된 전기차량 앞에서 두 손으로 엄지척을 하고 있는 이인숙 대표. 현장에 갈 때는 언제나 어깨에 쌕을 두른다. 쌕 안에는 메모용 수첩이 들어있다.  © 화성신문


  

아이 셋 둔 가정주부, ‘CEO DNA’를 발견하다

 

안중 땅을 살 당시 서른넷 나이의 이 대표는 아이 셋을 둔 가정주부였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집에서 살림만 하던 현모양처였다. 남편은 아는 사람에게 토목공사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중간에 도망을 갔다. 남편은 아내에게 공사현장에 대신 가달라고 요청했다.

 

애들 아빠는 나중에 사업할 마음은 있었지만 당장 사표를 쓸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가게 됐죠. 뭔가 둥근 게 돌아가는데 그게 레미콘 차인지도 몰랐어요. 안양 평촌에 살 땐데 도로 인프라가 안 돼 있으니 왕복 6시간 걸리는 거예요.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공사를 마무리했어요. 그런데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나에게 왜 이런 기회를 주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96년도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경영의 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하나하나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사업 분야는 특장과 자동차 정비 두 가지였다. 의외로 사업은 빨리 정착됐지만, 이 대표는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혔다. 자신은 집으로 들어갈 테니 남편에게 사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자재가 쌌어요. 1230원했어요. 지금은 2000원이 넘어요. 그때는 마진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래서 사업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집에 있는 애들이 눈에 밟히는 거예요. 아이들이 여섯 살, 일곱 살, 열 살 그랬거든요. 지금은 35, 36, 39세예요. 사업이 커지니 겁이 나는 거예요. 경험이 없으니까. 남편에게 회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죠. 남편이 고민 끝에 사표를 썼어요. IMF가 오기 전이었죠. 사표 쓰고 얼마 안 있으니까 명퇴제도가 생기더군요.”

 

 

▲ 2020년 현대자동차 최우수 특장 협력차로 선정된 후 수상한 상패.  © 화성신문

 

▲ 완성된 제품들이 야적장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 화성신문

 

이 대표는 남편에게 6개월간 인수인계를 했다. 그런데 사업이 남편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대표가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어느 날 OEM으로 납품하던 곳이 부도를 맞으면서 사업을 계속해야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게 됐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낸 특허로 인해 2001년도에 현대자동차 OEM업체로 등록됐다.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현대차와 연계되면서 공장이 너무 좁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의 화성 양감에 3000평 공장을 따로 지었어요. 2002419일 오픈했어요. 제가 법인 상전정공을 따로 낸 거예요. 안중에는 지금도 상전특장이 있어요. 남편이 하고 있어요. 거기는 정비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넓게 보였던 3000평 땅이 19년 만에 7500평으로 늘었다. 생산량이 많아져서 몇 차례에 걸쳐 부지를 추가로 매입한 것이다. 지금도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인근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1톤까지를 승용차로 봐요. 전문용어로 소상이라고 합니다. 1.5톤 이상을 상용이라고 부르고요. 우리는 소상과 상용 둘 다 현대자동차 OEM 업체예요. 차량 종류도 1톤부터 대형까지 다양해요. 1, 1.5, 2.5, 3.5, 4.5, 5, 8. 우리는 5톤까지만 해요. 처음에는 한 달에 30대를 납품했는데 지금은 월 300에서 400대를 빼야 해요. 그때는 현대자동차에서 특장은 알아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효자노릇 톡톡히 하고 있지요.”

 

지난해 상전정공 회사 매출도 30%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물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 따위를 받는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물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현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언텍트 시대니까 모든 게 물류로 통합니다. 우리는 더 바빠졌어요. 좋은 아이템 덕분이죠. 물류 종사자들이 차량에 문제가 생겨도 수리를 못하는 상황이에요. 바쁘니까요. 매일 차를 써야 하잖아요. 사고 나면 렌트카를 이용하듯이 사고나 노후화로 인해 탑이 망가지면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가 출장을 가서 수리를 한다든가 아니면 대체를 해준다든가 하는 거예요. 일종의 서비스죠.”

 

 

▲ 이인숙 대표가 현장에 나갈 때마다 기록한 내용이 담긴 수첩들. 30개가 넘는다고 한다.  © 화성신문


  

전기차 난제 무게 30% 줄여, 현대차 전폭 지원

 

상전정공은 현대자동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그 이유를 시대의 흐름을 빨리 알아차리는데서 찾았다. 트렌드를 읽으면 나아갈 길이 보인다는 의미였다. 현대자동차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기 배터리를 장착한 화물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상전정공이 미리 그 화물차에 맞는 을 생산할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올해 3월 말부터 화물차량용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정부 보조에 힘입어 가파르게 늘고 있어요. 전기차의 제일 큰 문제가 뭘까요? 가벼워야 되거든요. 배터리가 약하니까. 무거우면 물건을 많이 못 실잖아요. 전기차에 사용되는 탑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워야 해요. 탑은 기본 중량에서 10를 줄이는 게 얼마나 큰지 몰라요. 작년에 특허를 내서 현대자동차로부터 대상을 받았어요. 기존 탑 무게가 100이라면 저희가 30을 줄였어요. 앞으로 전기차 탑 물량의 70%를 저희가 만들어요. 아예 현대에서 그렇게 물량을 배정해 줬거든요.”

 

앞으로 상전정공은 별 일 없는 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자전거가 페달 밟기를 멈추면 넘어지듯이 이인숙 대표는 10년 먹거리 마련을 위해 또 다른 페달 밟기를 준비하고 있다. ‘플랫폼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에 대응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예측해요.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사업, 디지털화, 세 번째는 주방의 종말입니다. 우리 탑도 디지털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요. 특장업계가 막일은 아니지만 3D업종이라고들 하거든요.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곧 올 거예요. 쿠팡, 마켓컬리, GS 다 다녔어요. 실제로 가서 보고 애로사항이 뭔지 시장조사도 다 해놨죠. 올해 목표가 플랫폼 개념을 완성하는 거였는데 너무 바빠서 잠시 중단했어요. 세상이 변하듯 탑차도 옛날하고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해요.”

 

 

▲ 자식들이 이인숙 대표를 위해 만든 ‘최고 어머니상’.  © 화성신문

 

▲ 손주 작품.  © 화성신문

 

 

이 대표가 꾸는 꿈은 크다. ‘분야의 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4년 전인 2017년 색다른 경험을 자원해서 했다.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대표가 아는 회장의 회사 일부분을 1년간 경영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매년 30~40억 원씩 적자를 내던 상황임을 알았던 것이다. 직원이 1000명이 넘는 큰 회사였다. 이 대표는 그렇게 1년 간 두 개 회사를 오가며 경영했다. 1년이 끝날 무렵에는 40억 흑자 상태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 대표는 지금 바쁜 시간을 쪼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싶어서다. 올해 1학기 째다.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꼬박 수업을 듣는다. 사람들이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면 이 대표는 이렇게 웃으며 대답한다고 했다. “대통령 되려고요. 하하.” 웃음도 호방하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이 대표는 회사의 강점을 두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논스톱이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네모난 6개 면을 구성하는 판넬도 직접 제작한다. 동종 업계에서 판넬을 직접 만드는 회사는 상전정공밖에 없다.

 

다른 하나의 강점은 앞서 거론한 경량화. 판넬과 프레임 등 탑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에서 경량화를 구현했다. 철은 알루미늄으로 대체했고, 합판은 폴리에틸렌(PE) 소재로 교체했다. 100의 무게가 70으로 크게 줄어든 것도 그런 악착같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전정공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사장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내에 소사장이 6명 있다. 조립부 1,2,3, 도장, 프레임, 용접 파트가 각각 소사장제로 운영되고 있다. 작업이 착착 손발이 맞게 진행되기에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이 대표의 회사 운영 세 가지 철칙이다. 현대자동차에서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현장을 돌 때 이 대표가 탁송기사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 탁송기사에게 이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불도저 같으세요. 추진력이 정말 대단하세요.”

 

생산 현장을 돌 때 이 대표는 항상 작업복을 입는다. 신발도 운동화다. 어깨를 가로질러 맨 작은 쌕에는 휴대폰과 메모용 수첩, 볼펜 한 자루가 들어있다.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선할 점과 지시사항을 적은 수첩이 서른 개나 된다.

 

 

▲ 이인숙 대표가 집무실에서 전기차량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화성신문

 

이인숙 대표의 현대자동차 사랑은 각별하다. 신문에서 현대차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가위로 오려 수첩에 넣고 다닌다. 시간 날 때마다 고3 학생이 공부하듯 보고 또 본다.

 

진심으로 사랑해요. 정주영 회장님도 굉장히 존경합니다. 열정이 대단하셨잖아요. 저는 죽으나 사나 회사가 1순위예요. 1순위가 1순위 되게 한 현대자동차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하죠. 회사에 푹 빠져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그래도 아이 셋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삐뚤 게 안 나간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 대표 집무실 한 쪽 벽 탁자 위에는 최고 어머니상이라고 적인 공로상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 이 만든 상장이었다.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때 희열을 느껴요. 성취감이죠. 그 맛에 사업하는 것 같아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일할 때 있어요. 그럴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쁨을 느끼지요. 김우중 회장님 말씀을 인용하면 한국은 넓고 할 일은 많답니다. 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고요. 어릴 때 엄마한테서 너는 똥도 버릴 게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주변에서 남자보다 낫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가 농담으로 저 여자 아닌데요, 생긴 것만 여자지라고 이야기해요. 영화배우 장동건 보고도 멋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 보면 저 이상한 것 맞죠? 하하.”

 

좋아, 잘했어, 최고야.”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두 손 엄지척을 잘한다는 이 대표는 드러머. 지금은 일이 바빠서 연습을 못하고 있지만, 실력을 갈고 닦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멋지게 연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10년 후 나이 70이 되면, 경영수업 받고 있는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은퇴할 계획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재미있을 거예요.” 만학(晩學)에 심취한 것도 그 때문이란다. 그 계획이 궁금하다.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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