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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금형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 고재규 명장]
대한민국 최초의 기계 금형 명장
“금형 50년 변천사, 전시 금형박물관 건립하고파”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4/08/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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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신문

 

 

금형 산업은 제조업의 뿌리 산업이다. 다양한 제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며, 높은 정밀도와 일관성 있는 제품을 제공한다. 금형은 전방산업인 휴대폰·반도체·자동차·광학기기·가전제품 등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짓는 핵심 기반 기술이다. 금형 기술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하며,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술 발전과 혁신을 촉진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금형 산업의 발전은 전반적인 산업 성장과 직결된다.

 

우리나라 금형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 고재규 명장은 1971년 금형과 인연을 맺고, 1996년 국내 최초로 기계 금형 명장에 선정된 금형 경력 54년의 베테랑이다. 1982년 삼성전기에 입사, 오디오, VTR, 모니터, LED,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많은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어낸 바 있다. 2010년 삼성에서 정년퇴임 후 삼성으로부터 5년간 기술 고문으로 영입을 제안받았으나 현장에서 직접 금형을 만지며 후배들을 양성하겠다는 의지로 중소기업인 ㈜소닉스에서의 근무를 선택했다. 

 

2017년 4월 한국금형센터 센터장으로 취임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금형 이론 및 기술 교육, 시제품 생산 지원, 기술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현재는 명성의 대표로 금형 제작 및 컨설팅을 하고 있다.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1985년 지식경제부 장관상, 1987년 국무총리상, 1996년 국내 최초 기계 금형 부문 명장 지정, 고용노동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 1997년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 2006년 금형 부문 기능장 획득, 고용노동부장관 표창장, 2010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장, 2011년 동탑산업훈장, 2013년 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액 등 다양하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고재규 명장은 1971년 중학교 3학년을 마치기도 전 서울 구경 간다고 어머니한테 540원을 받아 서울로 올라온 뒤, 3년 연속 흉년으로 농사를 망쳐 굶기가 다반사인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입사 3일만에 그를 좋게 본 금형반장이 금형 부문에서 일을 배워보라고 권유해 금형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금형 선배들은 군기가 엄해 막내인 그는 매일 저녁 11시쯤 잔업이 끝나면 혼자 남아 12시까지 모든 청소를 끝내 놓고, 선배들이 사용하다가 버린 공구들을 이용해 새벽 2시까지 기술을 연마했다. 이때부터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에 열중하는 습관이 붙었다. 이런 그를 동료들은 철인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혹사하면서도 여태껏 병원 한 번 가보지 않았다며 건강한 몸을 갖게 해 준 부모님에게 늘 감사드린다고 한다.

 

1982년 20대 1의 경쟁을 뚫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기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부족한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주경야독하며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하고, 금형 관련 여러 자격증을 차례로 땄다. 

 

그는 금형 관련 일을 할 때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아 피곤한 줄 몰랐다고 한다. 타고난 손재주와 일에 대한 열정, 끈기, 호기심으로 온통 일에 파묻혀 현장 기술을 익힌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기계금형부문 명장으로 선정됐다.

 

한번은 사업부장이 “고 박사, 이 부서에 다 대졸 출신들이야.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데 그래도 학력이 받쳐줘야 해, 내가 시간 빼줄 테니까 대학 공부를 해 봐”라며 공부를 권유했다. 사업부장의 지원을 받아 일하는 틈틈이 성남에 있는 2년제인 폴리텍대학 금형과를 다녔다. 모든 일에 철저한 고재규 명장은 여기에서도 수석 졸업하고 4년제인 서울산업대에 편입해 2007년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3년 아주대학교 공학대학원 지식재산 공학과 석사 졸업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렇게 현장의 기술과 이론을 겸비해 탄생한 금형 관련 집필 서적이 12권이나 된다.

 

그는 금형 상태에 관해 불량 현상, 불량률 등을 제대로 설명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처럼 정확한 처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설비 곁을 지나다 보면 문제가 있는 설비가 그에게 “이리 와서 저 좀 고쳐주세요”라고 속삭이는 것을 느낄 정도로 기계 소리에 이상음이 있는 것을 예민하게 찾아낸다.

 

이렇게 많은 업적을 이룬 그에게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화성지역에 국내 최초로 금형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70년대 국내 금형 기술은 걸음마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50여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죠. 저는 금형 50년의 변천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꿈을 꾸고 있어요. 우리의 앞선 금형 기술에 대한 모든 것을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서 금형 전시와 함께 금형 컨설팅도 할 계획입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또 하나는 50여년의 금형 인생 역사가 담긴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돼 인생을 깨치는 도구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의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져서 중소기업이 많은 화성시가 금형 산업의 허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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