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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311]
인생도 리더십도 반전이 묘미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9/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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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     ©화성신문

1860년 5월 18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나선 에이브러햄 링컨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는 7월 중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있었으나, 164년 전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5월에 열리고 있었다. 이날 아침 10시부터 대의원들의 1차 투표가 시작될 참이었는데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링컨은 무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링컨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측근 중에는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는 단순히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해주는 사탕발림이라고 느껴졌다.

 

51세인 링컨은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따서 학력이라는 백도 없었고, 일리노이의 주도인 소도시 스프링필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정치 중앙 무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공직에 관심이 많아 주 하원의원에 두 번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연방하원의원에도 두 번 출마해 겨우 당선되었다, 그때가 그의 나이 37세였다. 그리고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상원의원에 한 번 더 출마했는데 이때 민주당 당수인 스티븐 더글러스와 상대하면서 낙선은 했으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 특히 그는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노예제 자유화(주별로 결정)를 주장하는 더글러스와 논쟁을 벌이면서 존재를 각인시켰다.

 

1860년 5월 공화당 전당대회는 특별했다. 1854년 창당한 공화당이 처음 대통령 후보를 내는 자리였다. 당시 노예제 폐지가 이슈가 되면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당이 공화당이었다. 1928년에 창당한 민주당은 노예제를 찬성하고 있었으며 제2당인 휘그당은 찬반을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당시 대통령 후보에 나선 사람 중에 유력한 사람은 윌리엄 헨리 슈어드였다. 그는 뉴욕주 상원의원을 10년 넘게 했으며, 주지사를 두 번이나 역임했다. 3일 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뉴욕 주 오번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었다. 

 

60세가 다 된 슈어드는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했으며 아침에 일어나서는 자신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드넓은 정원을 산책하며 나무와 꽃을 가꾸고 즐겼다. 대통령 후보 선거 일에도 그는 상쾌한 기분으로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오번 동네 사람들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대포가 병기고에서 공원으로 이동되었다. 기쁜 소식이 오면 바로 대포를 쏘아 온 나라에 즉시 알릴 참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동네 사람들이 슈어드의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오번이라는 동네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축제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럼, 투표는 어떻게 되고 있었을까? 1차 투표에서 슈어드가 173.5표를 받아 1위를 했다. 그런데 링컨이 102표를 받아 2위를 한 것이다. 이것은 이변이었다. 3위와 4위가 49표와 48표를 받은 상황이었다. 사실은 이들도 링컨보다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과반수인 233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2차 투표에 들어갔다. 2차 투표에서는 184.5표 대 181표로서 링컨이 3.5표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제 이 두 사람의 접전이 되었다. 3차 투표에서는 여러 주가 링컨을 선택했다. 결국 대세가 기울면서 기존에 결정했던 주도 재론을 통해 링컨에게 표를 던졌다. 결국 만장일치로 초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에이브러햄 링컨이 결정되었다. 슈어드 역시 뉴욕주의 표를 링컨에게 주도록 요청했다.

 

놀라운 이변이었으며 대단한 반전이었다. 이렇게 하여 공화당 후보가 된 링컨은 1860년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더글러스를 물리치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미국 16대 대통령이며, 공화당 제1호 대통령이 된 것이다.

 

링컨이 이렇게 극적으로 승리한 이유가 뭘까?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자신의 활동 무대인 일리노이주에서 열렸고,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당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어부지리를 얻는 면도 있었다. 게다가 선거 전략도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며 자신을 피력했으며, 청중에게 맞는 적절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수많은 실패와 도전 속에서 갈고닦은 그의 인품과 자질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때가 묻지 않은 진정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진정성 때문에 정치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 약점이 이렇게 반전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금년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떤 반전이 펼쳐질까? 수세에 몰리던 민주당이 조 바이든의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으로 반전이 펼쳐지는 듯하다. 이게 11월까지 갈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choyh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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