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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장중히 앉아 있을 뿐
이경렬의 백두대간 종주 수상록 (2)
 
이경렬 시인 기사입력 :  2012/10/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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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에서 99.9%는 뜻대로 하지 못하며 산다고 한다.

0.1%의 할 수 있는 일 중에 나에겐 산행이라는 것이 있어 행복하다. 어쩌다 산과 인연이 닿아 산을 좋아하고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것이 내 인생에서 축복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산악인의 꿈이라는 백두대간 완주라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면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쉽게 살아왔을 것이다. 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의 삶도 장애와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극복하며 이기며 살아가야 하듯, 내 앞에 놓여있는 이 대간길도 그렇게 가야한다.
가야할 길은 그냥 그렇게 놓여 있는 것이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있어, 나의 오름을 거부하지 않는다. 내림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산행은 삶의 모습처럼 계속될 것이다.


■ 지리산 역사 '숨결' 간직

“꼭 살아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 주세요”

어느 지리산 빨치산 대학생이 죽어가면서 절규하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그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인지 아닌지는 지나간 날이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의지가지없는 한 젊은이의 짧은 삶이 이 지리산 어느 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지리산 세석평전


중산리 매표소에서 30여분 오르면 칼바위가 나오고 등산로 옆 20여 미터 지점에 빨치산의 아지트가 있다. 몇 사람 웅크리고 있을만한 바위굴이다.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보급투쟁(마을로 내려가 식량을 구해오는 일. 처음에는 좌익과 우익을 모르는 순진한 마을 주민의 협조도 있었으나 후에는 약탈로 이어졌다.

주민의 소개와 토벌군의 감시로 점점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에서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군경 토벌군에 쫓겨 숨던 곳,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내며 혼곤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숨어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매나니로 버티다가 대부분 사살되고 얼어 죽고 굶어죽었다.

이름 없는 지리산 어딘가에서 허망하게 스러져 버렸다.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된 그들의 영혼은 지리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버려지듯 묻혀있으리라.

미끈한 둥치의 몇 그루 노각나무만 그 때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제 모습을 자랑하며 아지트 주위에 서 있다.

빨치산 중에는 투철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도 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위해 투쟁하며 목숨을 바쳐서까지 목표를 달성하려는 신념이 있었다.

역사적인 사명이고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들의 삶의 가치는 자신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죽어갔다. 영광스럽게 죽는 줄 알았고 영웅처럼 죽는 줄 알았다.

반대로 그런 이념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던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가 살던 것처럼 농사지으며 자식들 키우며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어찌어찌 인연이 그렇게 되어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사람들이다. 강제로 끌려온 사람도 있다.

 
■ 역사 상처 담은 '삼신봉'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싸웠다.
그들도 죽어갔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스러지거나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게 죽었다.
어쨌든 그들은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나 살면서 본의든 아니든 역사의 희생물이 되었고 시대의 비극을 가장 철저히 겪은 사람들이다.

   
▲ 신선봉 구름 위로 솟는 일출모습


중요한 건 그들도 사람답게 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아냈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자신들도 모르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도피하며 살아야 했다.

굶주림과 추위, 공포라는 멱찬 최악의 조건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산중에서 울고 웃으며 우리네들과 다름없는 마음으로 살아갔다.

가슴 뜨겁게 사랑도 하며 아픔과 슬픔을 겪기도 했다. 부모와 처자식을 그리워하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지리산은 이 모든 것을 덮어두고 있다. 그들의 삶이 역사로 기록되는 것도 거부하고 있는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듯 하다.

장터목이나 삼신봉에 서면 더 실감할 수 있다. 북쪽 계곡인 백무동골과 한신골을 넘나들며 토벌군에게 쫓겨 다니던 그들의 아우성은 간 데 없고 오로지 바람소리뿐이다.

남쪽의 거림골과 중산리골을 뒤흔들던 총성도 비명도 사라지고 그저 희뿌연 안개만 피워 올릴 뿐이다.
그 당시의 흔적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 덮어두고 있다.

지리산은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결코 내놓고 있지 않다. 품안 깊숙이 모두 담아둔 채, 지리산은 장중히 앉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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