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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우리시대 문화코드
독자에세이
 
김재철(향남읍 발안리) 기사입력 :  2012/10/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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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충남 서해안 판교 농촌마을에 정착한 적이 있었다.

도시를 떠나 공기 맑은 곳에서 앞마당을 빗질하며 살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자연산 광어, 전어, 주꾸미 등 제철 해산물과 유기농 채소가 풍부하고 전통 민속주 소곡주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 아닌가.

그런데 내가 판교로 이사했다고하니, 아니? 거 땅값 비싼 동네 아냐?
이사 한 후로는 버스를 타고 읍내 장터에 가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어느 장날, 우리 부부는 오전 여덟시 삼십분 하루 한번 집 앞을 통과하는 버스를 타고 문장리, 둔덕리 등 시골길을 통과해서 장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는 만원을 이루었지만 칠십대 이하인 손님은 우리 부부 뿐인 것인 것 같다. 머리 허연 내가 맨 뒷좌석에 앉아 있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먼저 탄 할머니 두 분은 쑥을 커다란 비닐자루에 담아 보자기로 쌌는데, 지난 5일 동안 밭둑에서 캔 것으로 한 관에 이천오백 원 받고 중간상에게 넘긴다고 한다. 모두 네 관이다. 중간상은 다시 서울 등지로 보
낸단다.

할아버지 한 분은 경운기가 고장 나서 농기계 수리 점에 갈 것이란다. 중간에 타신 하얀 양복에 백구두 신은 할아버지 한 분은 심심해서 장에 나가 친구들 하고 막걸리 한 잔 할 요량이라고 웃는다.

장터에 다 올 무렵, 다시 오는 버스는 어디서 타느냐고 물었더니 두 할머니는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여기서, 저기서도 탈 수 있고, 이 버스는 어디 어디로 가니 판교로 가는 것을 타라. 매시 정각에 탈 수 있지만 열두시에는 버스가 빠진다 등등을 일러준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집 앞을 통과하는 버스가 없다. 국도변 마을 입구에서 내려 이십분 가량 걸어야한다. 시골장터 기분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버스를 타자, 공교롭게도 아침에 이야기를 나눈 할머니 한 분을 다시 만났다.

“길 모르면 내 뒤만 따라 내려”. 마을 입구에서 내린 할머니는 모두 네 명이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 하는 듯 모두 걸음이 느리다. 세월 탓이다.

할머니 한 분은 길가에서 막대기 한 개를 집어 든다. 즉석 자연산 지팡이를 장만한 것이다. 몇 걸음 지나다 보니 걸음걸이가 조금은 불편한 할머니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보따리는 할머니 것이 아니다.

자연산 지팡이를 장만한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 것을 받아든 것이다. 몸이 불편해도, 느려도,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내가 받아들고 앞질러 가자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먼저 가면 마을회관 앞에다 보따리를 내려놔” 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이다.

장항선 기차는 충청도로 들어서면 느려진다. 나는 이곳 사람들도 기차처럼 느리다고 놀리기도 한다. 쑥 캐는, 보따리 들고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느리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며, 빨리빨리 문화가 아닌 소와 같은 행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슬로시티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들은 오래전부터 느림의 미학을 깨닫고 생활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느리게 산다는 의미’에서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슬로’라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순리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슬로시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 물질본능에서 자연, 인간본능으로 회귀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 코드라 할 수 있다. 슬로시티 창시자 파올로 사투르니니는 ‘슬로시티’ 정책을 도입한 뒤에는 더욱 바쁘게 지낸다.

우리가 바라는 농촌마을은 고유한 지역특성을 살려 녹색관광을 자원화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어가면서 멋진 삶을 촉진할 수 있는 느림의 농촌이다.

이는 곧 도·농상생의 원리이다. 슬로푸드를 즐기고 느림을 생활화하여 세월을 느리게 하자.
시간이 마음의 속도로 흐른다. 정중동(靜中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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